[티브이데일리 장수정 기자] 영화 '출국'은 혼란스러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틋함만은 잃지 않는 아버지의 사투를 통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를 연기한 배우 이범수의 열연에도 불구, 새로울 것 없는 전개와 지나친 감정 과잉은 '출국'을 그저 식상한 가족 영화로 남게 했다.

'출국'(감독 노규엽·제작 디씨드)은 분단의 도시 베를린, 서로 다른 목표를 쫓는 이들 속 가족을 되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월북했던 오영민이 공작 명령을 받고 독일로 입국하던 중, 가족들과 탈출을 시도하는 긴박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을 감시하던 북한 공작원은 아내 은숙(박주미)와 딸 규원을 납치하고, 이에 오영민은 첫째 딸 혜원(이현정)과 함께 헤어진 가족을 찾아 나선다.

탈출 시퀀스를 통해 쫄깃한 긴장감을 조성한 '출국'은 한 편의 긴장감 가득한 첩보 영화를 기대케 한다. 은숙과 규원을 인질 삼아 오영민을 잡으려는 북한 측은 물론, 오랜 친구인줄 알았지만, 실상은 안기부 요원이었던 무혁(연우진), 미국으로 대변되는 CIA 집단까지, 얽히고설킨 관계들이 베일을 벗으면서 이 같은 기대감은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오영민의 내면과 가족을 향한 애틋한 그의 속내가 집중적으로 담기며 영화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특히 엄마, 동생과 헤어진 큰 딸 혜원이 오영민과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꽤 비중 있게 담기며 가족 영화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념 갈등을 넘어선,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며 공감대를 넓힌 것이다. 노규엽 감독 역시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과거 경제학 박사의 비극적 탈출 사건을 접하게 됐다. 그 당시 내가 70, 80년대 아날로그 정서의 첩보물에 빠져있었는데, 실화에 가족을 잃은 아버지 이야기를 덧입히면 새로운 구조의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영화가 오영민의 감정선과 아버지를 향한 딸 혜원의 애틋함에 집중한 탓에 안기부와 CIA, 북한공작원 간의 갈등을 밀도 있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집단 간의 알력 다툼은 잘만 살렸다면 한층 풍성한 전개를 보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출국'은 그저 냉전시대라는 상황만 주어졌을뿐, 체제에 대한 혼란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상까지 반영하지는 못했기에 이러한 미묘한 디테일 역시 살아나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출국'은 초반 보여줬던 전개의 속도감을 잃는다. 탄탄한 전개가 선행 되지 않은 탓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어쩐지 허무한 모양새다. 영화 말미 황량한 벌판에서 오영민과 그를 쫓던 집단들이 모두 모이게 되는 장면에서 보여준 오영민의 갑작스러운 성장과 깨달음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이 같은 빈틈을 오영민의 절절한 감정으로 메우려 하며 설득력을 더욱 잃는다. 전개가 허술해 주인공들의 속내를 따라가기가 힘들고, 이런 상황 속 그들의 애틋함은 어떠한 오열과 절규에도 그저 신파적 전개로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출국'은 앞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지난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됐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제작발표회 당시 노규엽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라는 명분 하에 사실이 아닌 기사가 많았다. 한창 후반 작업 중이었다. 어떤 날은 마음이 너무 아팠고, 어떤 날은 기운이 너무 없었다"며 오해임을 어필했다. 실제 베일을 벗은 '출국'은 외적 논란을 차치하고서도 완성도 면에서 문제를 남겼다. 시대적 배경이 냉전시대가 아니었음에도 무관했던, 그저 평범한 가족 영화에 그친 '출국'이다.

[티브이데일리 장수정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출국' 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