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가요계서 빼놓을 수 없는 논란, 바로 '음원 사재기'다.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한 일부 가수들에게 제기된 사재기 의혹은 큰 파장을 낳으며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진상조사에 나선 바 있다. 계속되는 사재기 논란은 가요계가 음원 차트 순위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기를 얻어야 차트의 상위권에 오를 수 있다지만, 거꾸로 차트에 음원을 올려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요즘 가요계의 현실이다. 주로 음원사이트의 메인페이지에 노출돼있는 음원 차트는 인기를 측정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인기를 이끌어내는 주요 마케팅 수단이 돼버린 지 오래다. 덕분에 수익과 긴밀하게 연결된 차트 진입 여부, 순위 등은 민감한 부분이 됐다.

많은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발매 첫날 차트 상위권에 올리기 위해 '총공'을 치밀하게 진행한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또한 음원 사이트의 '1분 미리듣기' 서비스를 고려해, 음악 초반 1분에 승부수를 던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어쩔 수 없이 음원 시장은 차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차트 진입 못 하면, 신곡 소개하기도 어려운 구조"

재생수에 따라 음원을 줄 세우는 차트의 구조적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차트를 위주로 음악이 소비되다보니, 차트는 음원 재생수의 '빈익빈 부익부'를 낳는다. 차트에 들지 못한 음악은 평가를 받기도 전에 도태되기 십상이다. 이 가운데 아이돌 팬덤의 '총공'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아티스트의 경우,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의 피해자가 된다.

인기 래퍼 타이거JK는 "공 들여 만든 결과물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덤에 묻는 기분이다. 무덤 위로 꺼내주는 많은 팬덤이 구축되지 않은 아티스트들은 빛을 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레게 아티스트 스컬 또한 "발매 당일조차 음원사이트 1면에 걸리지 못 하고 실시간 차트에 들지 못 했을 경우에는 음원사이트에서 신곡을 잠시나마 소개하기도 어렵다"고 차트 위주인 음원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두 사람은 각 장르에서 유명한 아티스트임에도 차트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당 장르의 신예 아티스트나 인디 아티스트들에게는 차트 진입 장벽이 더욱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들이 대중에게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얻지 못 하는 셈이다.

음악을 즐기는 이들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와 멀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가장 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원 차트를 위주로 음악을 소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주로 차지하는 아이돌의 음악을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스컬은 재생수만으로 측정되는 음원 차트에 대해 "인기 있는 음악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용하지만, 대중이 음악을 점점 수동적이고 획일적으로 찾아 듣게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음원 차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 음악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재생수로 줄 세우는 음원 차트, 차트 중심의 음원 시장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에 음원 소비 구조의 획일화를 낳지 않도록 음원 서비스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적인 음원 서비스의 형태에 대해 타이거JK는 '메인 페이지에 모든 장르를 세분화해서 보여주는 것', 스컬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소개될 수 있고 공존하는 공간'을 꿈꾸고 있었다. 특정 장르, 아티스트만 쉽게 차트에 오르며, 리스너에게 소개되는 음악이 획일화되고 있는 세태를 경계하자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SKT, SM·JYP·빅히트 손 잡고 음원시장 재진출…음악의 다양성 존중될까

최근 음원서비스들은 덩치를 점점 키우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여러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음원 시장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KT와 LG유플러스가 주주로 있는 지니뮤직은 CJ디지털뮤직을 흡수합병했다. 네이버와 YG는 신규 음원서비스 바이브를 출시했다. 바이브는 이용자 취향에 맞는 추천 서비스를 주요 서비스로 제공한다. 동시에 실시간 톱 100 차트도 볼 수 있다.

2019년에도 음원 서비스는 하나 더 늘었다. 지난 2013년 멜론을 매각했던 SK텔레콤이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음원 시장에 다시 발을 들였다. 더불어 자회사 아이리버를 통해 음원 유통 사업도 함께 시행한다. SKT, SM, JYP, 빅히트가 손 잡고 출시한 신규 음원서비스 플로(FLO)는 AI 기반으로 개인 취향을 분석해 최적의 음악을 개개인에게 추천한다. 실시간 차트 탈피해 음악 소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SKT관계자는 "이용자들이 보다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인기차트 100위에서 소외됐던 아티스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기회가 찾아올 것이고 음악 생태계도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톱 100' 차트보다 큐레이션 서비스를 앞세운 바이브, 인기 차트를 없애고 큐레이션만으로 이뤄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로의 시도는 기존 음원사이트들과 다른 방식으로 리스너에게 음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다만 실질적으로 음원 시장에 미칠 영향력에 있어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선 기존 음원사이트 사용자들의 이동이 쉽지 않고, 음원사이트를 사용하지 않던 사람들의 유입은 더욱 쉽지 않다. 이에 점유율 50%가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진 마켓 리더 멜론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가운데 음원 차트를 중심에 내세운 기존 대형 음원사이트들의 변화는 미미하다. 사용자들의 편리성을 이유로 든 기존 업체들은 차트 폐지 대신, 새벽 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차트를 운영하지 않는 '차트 프리징'을 들고 나왔다. 음원 소비량이 줄어드는 심야시간대를 노린 음원 사재기 시도를 차단하겠다는 목적인데,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오히려 프리징 직전에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려 새벽 시간 내내 순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오용 사례도 있다.

실시간 음원 차트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요즘, 변화의 움직임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다만 다양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음악 산업에서 대기업들의 협력, 기존 업체들의 미비한 변화 등은 여러 음악을 존중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될 지 의문이 든다.

[티브이데일리 오지원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멜론·지니뮤직·바이브·플로 공식 홈페이지 및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