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19 합병증으로 타지에서 사망했다. 향년 60세. 불우한 어린시절을 딛고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으며 영예를 누렸던 고 김기덕 감독. 자신의 환갑일인 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사망한 그는 가족, 지인이 없는 타지 병원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러시아 매체들은 지난 11일 김기덕 감독이 이날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 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한 김기덕 감독은 이달 5일부터 연락이 닿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들은 김기덕 감독의 근황이 파악되지 않자 현지 동료들이 현지 병원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제작사 김기덕 필름 관계자는 “가족 확인 결과 외신에서 보도된 김기덕 감독의 사망 소식이 가족들에게도 오늘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모두 큰 충격에 빠진 상태”라고 말했다.외교부 역시 “현지시간 11일 새벽 우리 국민 50대 남성 1명이 코로나19로 병원 진료 중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주 라트비아대사관은 우리 국민의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관련 경위를 확인했다”면서 “현재 국내 유족을 접촉해 현지 조치 진행 사항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김기덕 감독은 한국 영화에 여러 족적을 남겼다. 1960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장에서 일을 하며 여러 기술을 섭렵했다. 경제적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고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영화, 미술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미술에 대한 동경은 그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대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고 김기덕 감독은 전역 후 프랑스로 떠나 미술과 영화를 공부했다. 프랑스에서는 초상화 그리기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주요 감독들이 영화 전공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달리 김기덕 감독은 독학을 택했다. 1996년 ‘악어’(1996)로 데뷔한 고 김기덕 감독은 2년 뒤 내놓은 ‘파란 대문’(1998)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문제작으로 언급됐지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초청 받았다.

그의 그로데스크한 세계관은 늘 국내 보다 해외 평단의 지지를 얻었다. 왜곡된 가족 구도와 여성 착취적인 요소들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국내에서는 이단아였지만 해외 평단은 달랐다. ‘섬’(2000)은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미국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상을 받으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상승세를 보였다. 늘 평가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이뤄지자 고인은 생전 엘리트 중심의 국내 평단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2004년작 ‘사마리아’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했고, ‘빈집’은 베네치아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안겨줬다. '아리랑’은 2011년 칸국제영화제에 출품돼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았다. 특히 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생에 정점을 찍은 건 ‘피에타’(2012)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모두 휩쓴 유일한 한국 영화 감독이 됐다.

그러나 삶의 말미는 불미스런 일들로 얼룩졌다. 2017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비판을 받은 것. 2018년 MBC ‘PD수첩’은 ‘거장의 민낯’ 편을 통해 김기덕 감독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배우들의 증언을 방송했고, 이 방송 분은 영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모든 것이 허위 주장이라며 MBC제작진은 물론 성폭력 주장 여배우를 상대로 1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MBC의 손을 들어줬다. 무고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에서 모두 패소하고 지난 11월 항소했지만 여론은 이미 싸늘해진 후였다.

여배우 폭행과 미투 논란 등으로 기존의 명성을 잃은 고 김기덕 감독은 국내에서 종적을 감추고 해외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작이 된 '디졸브'는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로 촬영한 작품이다.

외교부는고 김기덕 감독의 유족과 상의, 현지 조치 진행 상황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 장례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김기덕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