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도유꾼이라는 소재와 케이퍼 장르의 만남만큼은 신박했다. 그러나 좋은 재료들로 만든 결과물은 처참하다. '파이프라인' 이야기다.

26일 개봉된 영화 '파이프라인'(감독 유하·제작 곰픽쳐스)은 대한민국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의 '기름'을 훔쳐 인생역전을 꿈꾸는 도유꾼들의 막장 팀플레이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다. 프로 도유꾼 핀돌이(서인국), 프로 용접꾼 접새(음문석), 땅굴 설계자 나과장(유승목), 큰삽(태항호), 카운터(배다빈) 등은 한 팀으로 뭉쳐 큰돈을 벌고자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에 임한다.

이번 영화는 국내 영화 최초로 '도유'를 소재로 차용했다. 이를 케이퍼 무비 장르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기대를 높였다.

극 초반 분위기는 좋다. 도유의 방법과 이를 위장하는 법, 그리고 폭발의 위험성과 대한민국 유일무이 천공 기술을 갖고 있는 핀돌이의 중요성을 소개하며 소재에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또 도유꾼 뒤에서 어두운 계략을 세우고 있는 대기업 후계자 건우(이수혁)의 모습을 비추며 긴장감을 더했다.

하지만 초반에 쌓아 올린 흥미는 본격적인 도유 작전이 시작되면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주요 원인은 반전의 남발과 캐릭터 매력의 부재다. 케이퍼 무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단연 범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감과 몰입도, 그리고 캐릭터 플레이다. 대표적으로 한국 영화 중에선 '도둑들'이, 해외 영화 중에선 '오션스' 시리즈가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살려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먼저 반전이라고 하기도 뭐한 반전들이 반복되면서 이야기의 힘을 잃는다. 반전은 108분의 러닝타임 동안 남발된다. 이것만 해도 피로한데 복선을 대놓고 주다 보니 모두가 예상이 가능한 반전들만 펼쳐지고, 긴장감은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 여기에 신파까지 얹어지니 관객들은 영화에 통 몰입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매력까지 반감되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보통의 케이퍼 무비는 캐릭터 플레이가 중요하다. 그러나 '파이프라인' 속 모든 캐릭터들은 왜 그 많은 범죄 중 굳이 '도유'를 하게 됐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또 개개인의 능력이 돋보일만한 신이 펼쳐질 때면 반전이 함께 터져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영화 초반 내내 다른 일처리 방식으로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이던 도유꾼들이 갑자기 협동하는 과정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핀돌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1인치 드릴을 사용하는 천공기술자로 홀로 하는 작업이 익숙한 탓에 팀 활동을 꺼려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팀원들에게 까다롭다. 그건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핀돌이는 나과장과 접새의 짧은 가정사를 듣더니 돌연 출중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기 시작한다. 흩어진 팀이 하나로 뭉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물음표만 그어진다.

디테일 면에서도 아쉽다. 석유나 휘발유 같은 기름을 다루는 정유기업들은 주로 해외 업체들과 거래를 하기에 배럴이나 갤런 등의 국제단위를 사용한다. 그러나 회사의 후계자라는 건우는 리터라는 단위를 사용해 몰입을 떨어트린다. 여기에 사람이 총을 맞고 사망했음에도 당장 용의자 조사를 하지 않는 경찰이라니,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처럼 '파이프라인'은 도유라는 좋은 소재를 케이퍼 무비로 담아내는데 완벽하게 실패했다. 고군분투하며 연기한 배우들만 안타까울 뿐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파이프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