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종은 기자] 25년간 한 길만 걸어오며 고민과 시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을 넘어 지금의 단단한 자신을 완성해냈다. 힘든 여정 속에서도 그동안 이세영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굳건한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극본 정해리·연출 정지인)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 극 중 이세영은 이산(이준호), 훗날 정조의 사랑을 받는 성덕임(이세영) 역을 연기했다.

이산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작품은 이미 한 편 존재했다. 2007년 인기리에 방송된 '이산'이 바로 그 주인공. 그럼에도 이세영이 '옷소매 붉은 끝동'을 선택한 건 이전작에선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세영은 "시놉시스를 봤는데 '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라는 글귀가 눈길을 끌더라.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궁녀의 마음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며 홀린 듯 대본을 읽게 됐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던 궁녀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녀의 시점으로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어떨지 궁금해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세영을 홀린 '옷소매 붉은 끝동'만의 매력은 시청자들까지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다. 첫 회가 5.7%(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의 평범한 시청률로 시작한 것과 달리 4주 만에 두 자릿수를 돌파한 데 이어 최종회는 17.4%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 MBC 드라마가 15%을 돌파한 건 2017년 7월 종영한 '군주 - 가면의 주인' 이후 4년 반 만이다.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노력하셨는데 그 이상으로 따뜻한 사랑을 받아서 너무 행복하다. 종영해서 아쉽지만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는 소감을 전한 이세영은 "촬영을 하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요즘은 TV로 드라마를 잘 안 보시지 않나 생각했는데 식당에 가면 '옷소매 붉은 끝동'을 시청하고 계시더라.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보고 알아봐 주셨고 심지어 캐릭터 이름까지 알고 계셨다. 그때 인기를 좀 실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세영은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아직도 끝난 것 같지 않다"면서 "일해야 하는 데 왜 지금 쉬고 있나 싶다. 엔딩의 여운이 오래가는 것 같다. 만약 차기작에 들어간다면 잊히겠지만 억지로 잊으려 하고 있진 않다. 이 여운을 꽤 오래 남겨두려 한다"고 전했다.


인생 캐릭터 성덕임을 연기하면서 느낀 감정은 어땠을까. 성덕임은 죽음 전까지 밀당하듯 이산에게 온 마음을 주지 않는 인물이기에 감정 표현이 쉽진 않았을 터. 이세영은 "물론 작품 속에서는 덕임이가 마치 밀당하듯 그려졌지만 개인적으론 궁녀가 왕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껴지시게 표현하곤 싶지 않았다. 또 스스로가 정리돼있지 않다면 감정선이 복잡하고 어렵게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덕임이는 산이를 연모했다'는 마음은 정해둔 채 연기했다. 다만 언제쯤 덕임이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될까를 많이 고민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세영은 "대본에도 사실 덕임이의 마음이 명확히 나오는 부분은 단 한 번도 없다. 마지막에 '아직도 모르십니까. 정 내키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달아났을 것이다'라는 말 말고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덕임이는 산이를 완전히 사랑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산이에게 반한 계기 역시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부분이 있지 않냐. 그렇기에 쓸쓸함, 아쉬움, 처연함 그런 감정이 극 중에 묻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사랑했으나 그로 인해 잃은 것이 많았고 온전히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힘없고 보잘것없는 덕임이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산이에 대한 마음을 멈출 수 없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6회와 14회 장면이죠. 5회까지만 해도 그저 충의로서의 연심이었지만 6회 엔딩에서 산이의 벗은 몸을 봤을 때 그를 본격적으로 남자로서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리고 14회, 덕임이가 이산의 옷소매 자락을 붙잡는 장면은 덕임이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멈출 수가 없게 된 순간이라 생각해요. 늘 밀어냈는데 정말 끝이라 생각한 순간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진심인 거죠. 어느 순간 확 반했다기보단 점차적으로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세영은 성덕임을 연기하며 초점을 맞춘 부분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덕임이는 어쩔 수 없이 큰 사건에 휘말렸지만 사실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다. (산이에 비해) 보잘것없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도 않다. 거기서 느껴지는 무력함을 더 작고 슬프게 표현하려 했다. 그걸 더 강조하기 위해 초중반부 장면들을 더 행복하고 기쁘게 보이도록 했다. 그간 사극을 하며 권력을 쥐고 싶어 하는 캐릭터는 많이 봐왔는데 이렇게 가늘고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은 처음 봤던 것 같다. 궁인들의 일 중 하나이지만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능동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덕임이를 역동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세영은 데뷔 25년 차에 선택한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큰 선물을 받는 데 성공했다. 너무나도 큰 성공이기에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은 분명 있을 터. 그럼에도 이세영은 "부담감보단 선물이라는 느낌이 더 크다"라며 25년 내공을 증명하는 듯한 단단한 답변을 건넸다.

"선물이란 매번 받을 순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이세영은 "다시 한번 선물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매 작품에 임하지만 큰 기대도 안 한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 그저 '연기를 잘 하고 싶다' '밥 값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해왔던 것 같다. 그렇게 25년이 지났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담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주변 선배분들을 보니 본인의 연기뿐 아니라 주변 후배들과 스태프들도 잘 아우르시던데 그런 걸 보며 부족함도 많이 느낀다. 제 것만 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꿈이 있다면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듣는 거다. 시청자들로부터 '쟤가 하는 작품이라면 되게 재밌어'라는 말을 듣는 게 소망이다. 앞으로 꾸준히 제 본업을 잘 하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연기를 향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연기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없어요. 제가 사실 남다른 재능이나 기술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연기를 하고 있는 거죠. 전 또래 친구들에 비해 빨리 진로를 결정한 편인데, 정말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요. 물론 또 다른 꿈이 생긴다면 그것에 열중하고 몰입해 해보고 싶지만, 또 언제든 할 수 있는 나이이지만 아직까진 연기가 좋아요. 연기는 계속 꾸준히 평생 하고 싶은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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