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또 다시 대중예술 인력을 향한 병폐가 포착됐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낭만닥터 김사부' 등을 집필한 사단 '글라인' 인력 공고가 논란을 불렀다. 밤샘이 일상인 창작 업계에서 인력을 염가로 굴린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일 한 드라마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에서는 글라인의 보조작가 모집 공고가 게재됐다. 글라인은 강은경 작가가 이끄는 작가 그룹이다. 유며 드라마 JTBC ‘부부의 세계’ 주현 작가, JTBC ‘미스티’ 제인 작가’, JTBC ‘기상청 사람들’ 선영 작가, 영화 ‘극한직업’ 허다중 작가 등이 소속됐으며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창작 집단이다.

하지만 모집 공고 속 지나치게 열악한 조건이 문제시 됐다. 급여는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로 상정돼 있는데, 이는 법정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부터 시작돼 논란을 부른다. 2022년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최저시급 9160원에 주 40시간 근무(유급 주휴 포함) 기준으로 월급 191만 4440원이다.

여기에 3개월 수습 조건 역시 작가 지망생들을 힘 빠지게 하는 요소다. 수습에서 통과되지 못할 시, 보조작가에 들 수 없다는 명목이다. 뿐만 아니라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모티프로 한 20자 내외 단막극까지 제시했다. 아이디어를 갈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인다.

통상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는 것은 경제적 궁핍을 전제한다. 어떤 업계든 성공도 소수만이 거머쥔다. 음악을 하는 사람도, 무명으로 극단을 도는 사람들도 오랜 뒤안길을 거치는 일이 다반사다. 운과 실력이 모두 따라주면 빛을 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고픈 예술가로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계 역시 마찬가지다. 적은 페이로 자신의 열정을 담보 삼는 현장 분위기는 오래도록 우려를 자아냈고, 스타들 역시 이 같은 병폐를 시상식 등을 통해 공론해 왔다. 스토리의 신이라 불리는 작가들도 그렇다. '쪽대본', 밤샘 작업이 일상인 이들은 고혈을 짜내며 신을 써내리고, 보조인들 역시 입봉 전까지 창작의 고통과 씨름한다. 신성한 노동의 가치와 별개로 이들의 노동은 미래를 위한 보험으로 취급되는 셈이다. 스타 작가가 되기엔 실력이 부족하거나 '짬바'가 차지 않았다는 근거는 합당치 않다. 경력에 따른 차등 지급이 당위라 하더라도, 최저시급도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은 사실상 대중예술계의 적폐다.

일각에서는 제 아무리 창작가집단이라 해도 과도한 '열정페이'를 제시해 업계 노무 문화 전체를 염가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인다. 스타 작가 사단이라는 사실은 더군다나 공분을 부른다. 현재 유명 작가들을 모시기 위해 제작사에서 부르는 몸값은 회당 수 천 만 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들이 지난 날 무명 시절 당했던 설움을 지망생들에게 관습적으로 대물림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논란에 관해 글라인 측은 별다른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작가 지망생들 역시 자신의 꿈을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JTBC, 커뮤니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