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온 몸이 전부 검은 빚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면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 할 수 없어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 재위 26년 2개월 간의 국정을 기록한 인조실록에 실린 소현세자의 죽음은 마치 후손들에게 그 의문을 풀어 달라는 듯 강렬한 의문 부호를 남겼다. 비운의 왕세자가 남긴 마지막 기록을 둘러싸고 여러 설들이 존재하지만 후손들의 추측과 해석, 결국 상상력에 기인하는 것들이다.

오는 28일 개봉되는 유해진, 류준열 주연의 ‘올빼미’(안태진 감독,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작)는 스크린에 실제 역사를 스케치하고, 흥미로운 상상으로 색을 덧칠한 작품이다. 실존하는 역사와 그럴싸한 상상이 결합된 잘빠진 사극 스릴러 물이 나왔다.

영화는 어둠에서는 흐릿하게 볼 수 있고, 밝은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주맹증을 앓는 시각장애인 침술사 경수(류준열), 허구로 창작된 한 소경의 눈으로 조선의 왕 인조(유해진)와 소현세자(김성철)의 죽음을 바라 본다. 경수가 하루 동안 소현세자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렸다.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주맹증이라는 장애 현상을 통해 펼쳐지는 궁내 암투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역사를 모티브로 한 팩션(팩트+픽션)은 '역사가 곧 스포일러'기에 그럴싸한 개연성 무장이 필수다. 개연성 없는 상상이 허무맹랑한 역사 왜곡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그 상상은 탄탄하고 촘촘한 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조실록에 등장하는 소현세자의 치료를 담당한 어의 이형익(최무성)을 활용한 건 자연스러워 보였다. 역사와 상상의 결합이 실처럼 얽히고설켜 빼어난 이야기를 이뤘다.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스릴과 긴장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

물론 영화적 발상에 불과한 스토리도 등장하지만, 일부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볼 수 없는 것 마냥 행동해야 하는 주맹증 소경의 존재는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경수를 지배하는 '보고서도 못 본 척 해야 하는' 일상에 대한 신념은 강국에 둘러싸여 눈치만 봐야 했던 조선의 비애를 닮았고, 소현세자의 미스테리하면서도. 분명한 죽음을 설명하는 동기로도 작용하는 장치가 된다. 청,명나라의 등살에 몸살을 앓은 조선, 그 가운데에 놓인 인조와 소현세자의 부자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 강대국들의 논리에서 외교적 난제를 풀어야 하는 현 한국의 모습을 닮아있기도 하다.

경수는 소현세자를 향해 말한다. “사람들은 소경이 보는 걸 싫어합니다. 본 것도 못 본 척 해야 합니다.”라고. 권력의 비리를 목격하고도, 못 본 척 스스로를 검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 심리는 주맹증의 장애 현상, 그것과 꼭 닮아 애달프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유일하게 목격한 경수는 용기를 내 “모든 것을 보았다”고 소리친다. 소신을 뒤로 하고 자신이 본 진실을 말하지만, 소경의 말을 믿는 자는 없다. 의구심이 들어도 그 의심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평범하고, 힘 없는 자가 현실에서 살아남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심지어 소경이 무엇을 보았든 대체 뭘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권력을 향했던 의심은 자신들을 향하기 시작한다.

결국 실제로 존재한 어떤 사실은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 판단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분명히 일어난 어떤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실록을 바라 보는 후손들의 해석이 분분한 것 처럼. 무엇이 사실이었는지 지난 역사를 보는 자, 남겨진 자들은 알 수 없다.

'올빼미'는 역사와 상상을 더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번 작품으로 3회 연속 호흡을 맞춘 주인공 유해진, 류준열의 도전과 성장도 눈에 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왕 역에 도전한 유해진은 말투부터 표정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권력에 취해 앞을 보지 못하는 인조의 히스테릭한 면에 집중한 심리 연기가 돋보인다. 유해진표 유머가 전혀 등장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류준열의 눈에 띄는 도약은 평가 받을 만 하다. ‘독전’, ‘리틀 포레스트’, ‘뺑반’에 이어 ‘돈’, ‘봉오동 전투’, ‘외계인+1’ 등 차곡차곡 필모를 쌓더니 어느새 배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스크린에 어울리는 연기자가 됐다. 그의 말대로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점’이 연기에 힘을 실리는 배경이 됐다. 류준열 홀로 영화의 긴장 축을 담당하며 이끌어가는 부분이 많은데 부담감 없이 편안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스스로 캐릭터에 몰입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끌어 들인다.

오는 28일 개봉.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