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어떤 작품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은 당시를 살아낸 수많은 이들의 기억을 끌어안는 일이다. 즉, 제각각의 삶에 공통의 매개체가 되어, 그것을 다시 접하는 순간 특정 시간대로 되돌아가게 한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이겠다.

13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하 ‘아바타2’)과 90년대 청소년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아바타2’는 개봉 4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달성했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1월 4일 개봉한 이래 여전히 큰 인기를 끌며 27일과 28일에는 연일 관객 순위 1위에 올랐으니까.

2009년, 영화 ‘아바타’는 등장과 함께 전 세계 영화인은 물론이고 영화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마음마저 혹하게 했다. 이야기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거니와 이모션 퍼포먼스 캡쳐 기술(카메라가 얼굴 전체를 실시간으로 캡쳐해 모공의 움직임까지도 CG화하는 기술)과 3D 입체 기술 등을 활용하여 탄생시킨 ‘아바타’의 영상미는 영화관에서 맛볼 수 있는 황홀함의 극치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안 본 사람을 찾는 게 더 쉬울 만큼, 너도나도 상영관으로 몰려가 ‘아바타’를 관람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어느새 작품 속 나비족의 세계 ‘판도라’는 단순한 허구의 공간 이상의 의미를 띠고서,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영화를 봤다는 이유 하나로 기억 속에 동일하게 지니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한 ‘아바타’가 2022년 9월에 ‘아바타 리마스터링’으로, 2023년엔 속편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바타’의 기억을 공통으로 가진 이들로서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일 터. ‘아바타2’는 오랜 시간을 건너 찾아왔음에도 다시 한번 천만의 영예를 안는다. 아주 거뜬하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거두고 있는 놀라운 성과도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1992년 연재를 시작하여 1996년 완결된 일본 만화 ‘슬램덩크’는 당시 주 수요층인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거대한 인기를 누렸다. 특히 안방극장에 ‘슬램덩크’가 방영할 때는 그 시간대만 되면 골목이나 거리에 청소년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대표 OST인 ‘너에게로 가는 길’은 당시 모든 학교 체육 대회의 단골 주제가였다. 농구 경기가 있다면 더더욱.

이렇게 ‘슬램덩크’와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오늘의 3, 40대, 각각의 모양새를 지닌 어른이 되었음에도 닮은꼴의 그리움을 가지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관람하고 있다. 이들에게 ‘슬램덩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학창 시절을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너에게로 가는 길’ 한 소절에, ‘슬램덩크’의 한 장면에 그때 그 시절이,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라 패기 있게 외칠 수 있었던, 설익어 한층 더 아름다운 시기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그리움은 불가항력의 감정이다. 이러한 그리움이 공통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 매개체가 여전히 별문제 없이 건재하다면 이미 끝난 게임이다. ‘아바타2’에 이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많은 이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으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오늘의 영광까지 쌓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영화 ‘아바타: 물의 길’, ‘더 퍼스트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