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한국의 창작자들은 넷플릭스에 모든 저작권을 양도했더라도, 발생한 매출 만큼의 수익을 나눠 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불가능'이다. 황동혁, 윤제균부터 임순례, 장항준까지 내로라하는 영화 감독들이 이 불가능을 극복하기 위해 국회에 모였다. 이들은 저작권법 개정안 심사와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한목소리를 냈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영상저작자의 정당한 보상,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선언회’ 행사가 열렸다. 배우 유지태가 사회를 맡았으며 DGK(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인 윤제균 감독, 장항준 감독, 홍성은 감독, 홍원찬 감독, 임순례 감독, 김한민 감독, 양윤호 감독, 김은희 작가 등이 참석했다. DGK와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성일종,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진행된 행사다.

이들에 따르면 프랑스,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40여 국은 자국에서 발생한 타국 창작자들의 저작권료를 공정히 지급하고 있다. DGK를 비롯한 이날 참석 인사들은 해당 국가들에서 발생한 저작권료를 한국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히며, 타국에서 발생한 한국 콘텐츠 저작권료를 수집해 이를 창작자에게 정산할 수 있는 단체를 설립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한국의 경우 아직 관련 법이 없어 해외에서 챙길 수 있는 저작권료를 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조속히 저작권법 개정안을 심사하고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 영상저작물 공급 계약은 작가, 감독 등 창작자가 영상물 최종 공급자에게 모든 IP(저작재산권)를 양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때문에 영화 창작자의 경우 TV, 인터넷TV, IPTV, OTT 등 다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전혀 보상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을 설정하는 것이 저작권법 개정안의 골자다.

이날 황동혁, 장항준, 김한민, 임순례, 홍성은 감독 등은 스페인, 아르헨티나의 저작권 단체로부터 현지 스트리밍에 따른 저작권료를 전달 받았다. 2개국은 한국의 법이 미비한 탓에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지만, 한국 영화계의 저작권법 개정 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선제적으로 이벤트를 마련했다.

일정상 행사에 불참해 영상으로 소감을 대신한 황동혁 감독은 “이 직업은 보이는 것만큼 화려하지 않다. 저 역시 어려울 땐 한 달에 2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힘겹게 살았다. 또 한 작품 후 다음 작품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입이 변변치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좋은 창작자들이 나오려면 이 직업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외치는 제2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좋은 인력이 이곳으로 몰려와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오고 산업이 선순환한다”라며 이를 위해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항준 감독은 “수많은 선배 감독님들, 창작자들의 피와 땀이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를 지켜온 것"이라며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된 제 아내 김은희도 그렇고 모두가 한 때 어려웠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떠난 동료 감독들도 많다”라며 저작권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사해 달라고 호소했다.

DGK에 따르면 한국 창작자들이 해외에서 받을 저작권료들은 이미 곳간에 쌓인 상황이다. 다만 법과 단체가 없어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항준 감독은 “전 세계에서 징수될 한국의 1년 저작권료만 450억 원이라더라. 그 돈이면 많은 창작자들이 먹고 살 수 있다. 최소한의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2의 황동혁, 봉준호는 나오기 힘들거다. 여러분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임순례 감독 역시 “시대가 변하고 콘텐츠의 유통 방식이 바뀌었는데 우린 1987년에 만들어진 저작권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단돈 100원이라도 좋으니 창작자로서 공정한 보상을 받고 싶다. 개정안이 통과돼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맞이할 수 있길 빈다”고 말했다.

이날 감독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한 저작권법 개정안에는 영상 저작자가 영상물 최종 공급자에게 저작재산권을 모두 양도했더라도 이용 수익에 따른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TV 프로그램의 재방송료, 음원의 스트리밍 저작권료과 마찬가지로 OTT 드라마와 영화들도 시청될 때마다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저작권료로 나눠야 한다는 것. 개정안에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저작권료를 관리, 배분하는 단체를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성일종, 유정주 의원이 발의했으나, 현재 상임위 법안 심사가 이뤄지지 않아 통과가 지연된 상태다.

저작권법 개정안에 가장 반발하는 건 OTT 등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들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의 IP에 대한 소유권을 온전히 가지고 있더라도, 한국의 작가, 감독 등 창작자들에게 스트리밍에 비례하는 저작권료를 일정 배분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한편 지지 선언에 참여하는 창작자 단체는 현재까지 영화/영상 관련 DGK를 비롯해,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한국영화감독협회 등 24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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