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인희 기자] 배우 장은아는 자신을 ‘신인 배우’라고 소개했다. 통상적으로는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을 거쳐 ‘피해자들’로 첫 주연을 맡았으니 ‘신인’이 맞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뱉어내는 단어들이 도통 예사로운 게 아니다. 허리에 새긴 문신은 현대사진 작가 만 레이의 ‘앵그르의 바이올린’, 좋아하는 작품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세이사쿠의 아내’다. 그는 자신의 롤모델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 감명 받고, 연기생활에 원동력이 되는 작품들을 읊었다. 그러던 사이 배우 장은아에 대한 호기심은 높아져 갔다.

31일 개봉한 영화 ‘피해자들’(감독 노진수‧제작 노시스)에서 장은아는 아버지에 대한 성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여주인공 가인 역을 맡았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인의 눈빛은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진다. 장은아는 오직 눈빛만으로 트라우마와 현실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의 아픔을 표현해냈다.

그는 다소 폭력적이고 잔인한 ‘피해자들’이란 영화를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죄송하지만,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지금이랑 시나리오가 많이 달랐어요. 그래도 캐릭터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었거든요. 근데 제 생각이 감독님께 전해졌나 봐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께서 만남을 제안하셨고 후에 시나리오를 고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2번 정도를 더 거절하게 됐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작품을 2번 거절하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지겠지만, ‘피해자들’은 여배우로서 도전하기 힘든 작품이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과 베드신 등이 신인배우의 이미지를 굳어지게 할 수 있으니 충분히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장은아는 이 영화를 선택했다. 그 가운데는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세이사쿠의 아내’가 존재했다. 그는 “‘세이사쿠의 아내’를 보며 꼭 연기해보고 싶은 장면들이 있었는데, ‘피해자들’에서는 실험하고 공부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서 가인과 도경이 서로 교감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베드신’이 필요하다. 막상 영화의 뚜껑이 열리고 나선 자극적이라는 생각보다 캐릭터에 대한 아픔이 더 크게 전해졌지만, 신인 여배우에게 베드신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회사에서는 하지 말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어차피 확 이슈가 될 만큼의 영화는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계속 영화를 찍을 사람으로서 이 시기만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노진수 감독님이 믿음을 준 부분도 있었고요. 이 영화에 참여해서 인생에 좋은 에너지가 생긴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은아의 눈빛은 단단했다. 작은 소리로 조근조근 읊조리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강단이 엿보였다. 그런 장은아에게 그럼에도 노출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히려 “영화보고 야하다는 생각이 드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그래요. 분명 베드신은 찍었는데 안 야하다고요. 이건 찍는 사람과 연기하는 사람의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노진수 감독님께서도 오히려 제가 시선을 확 뺏을 만한 몸매였다면 저에게 시나리오를 건네지 않았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이 영화에서 베드신은 굉장히 중요해요. 가인이가 도경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거든요. 감정이 중요했기 때문에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장은아는 소지섭 주연의 영화 ‘회사원’을 거쳐 ‘피해자들’까지 액션, 폭력, 스릴러 장르 작품에 참여했다. 소지섭과의 촬영에선 주먹으로 맞고, 발로 차이며 영화를 찍었고, ‘피해자들’에서도 만만치 않은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왜 이러한 어렵고, 힘든 영화만 찍느냐는 질문에 그는 “명품 옷만 입고 런웨이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제 친구가 저한테 팔자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아무래도 제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과감한 면이 있는 거 같긴 해요. 저는 뭔가를 선택할 때 확실히 100% 원한다는 생각이 들면 망설이지 않는 것 같아요.”


장은아는 지난 2008년 ‘내 마음의 풍금’ 뮤지컬 여주인공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에는 오만석 조정석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참여했다. 이어 장은아는 영화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캐릭터를 찾기 위해 단편‧상업 할 것 없이 많은 작품에 얼굴을 비췄다.

신인배우로서 장은아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직 그를 잘 모르는 관객들 혹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어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을 골똘히 한 뒤 이내 입을 뗀다.

“제 나이또래 여자 배우들 중에서는 저만큼 영화를 보고 공부를 많이 하는 배우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연기를 잘한다고는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배우들에겐 ‘간접경험’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저는 간접경험과 제 안에 내공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어요. 순전히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말 행복해요.”

현재 장은아는 케이블TV Mnet ‘엔터테이너스’에서 윤종신 뮤지 조정치 박지윤 김예림 틴탑 등과 함께 코믹 연기에 도전하고 있다. ‘피해자들’ 가인의 모습만 보고는 코미디를 도전하는 장은아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스릴러 액션 공포에서 코믹까지, 장은아는 스펙트럼을 정해놓지 않고 자신이 갈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다. “정말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는 야무진 그의 말에서 그 누구도 그의 한계를 재단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티브이데일리 최인희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조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