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상길의 연예퍼즐]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굳이 등급을 나눈다면 A급으로 분류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스스로를 B급으로 등급 매기고, 활동 역시 B급에만 안주하려는 사람이 있다. 일반 사회의 평범한 판단으로 보면 그는 분명 이상한 사람이다. 하지만 예술의 세계에 들어오면 다르다. 예술가들의 등급은 세상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A급을 자신하지만 C급에 못 미치는 허섭스레기가 지천에 깔려 있는 분야가 예술계이다. 반면 "나는 B급이로소이다"라고 자세를 낮추어도 그를 천재로, 인물로 추켜세우는 B급 C급도 적지 않다. 미국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53)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비평가들은 쿠엔틴을 'B급 감수성의 선두주자'라 부른다. 그는 B급을 지향하지만 A급으로 인정받는, 특급 감독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펄프 픽션'(1994)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에서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사람들이 그를 'A급' 또는 '최고'라고 평가하지만 그는 격식과 위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만의 실험을 거듭하며 호평과 악평 사이에서 줄을 탄다. 그가 은막 위에 펼쳐 놓는 세상은 넓고 한계가 없다. 지극히 유치하기도 하고 굉장히 고상하기도 하다. 그를 두고 '불가사의 감독'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많은 영화학도들이 그의 작품을 '교과서'삼아 연구하고 오마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미국 테네시주 크녹스빌에서 16세의 간호학도인 어머니와 21세의 법대생이자 배우지망생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체로키인디언 피가 반쯤 섞인 어머니는 유별난 영화광이었고,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극장을 들락날락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영화사랑은 이후 식을 줄 모른다.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22세에 캘리포니아 맨해튼 비치의 비디오 가게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5년간 점원으로 일한다.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고, 토론하고, 손님들에게 비디오를 추천해주면서 지냈다. 훗날 그는 "이 기간은 내 인생 중 주머니는 가장 가벼웠으나 마음은 제일 풍족한 때였다"라고 술회했다. 아무런 고민 없이 일하는 틈틈이 예술영화부터 삼류영화까지 모조리 섭렵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쿠엔틴의 장편영화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은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는데, 비평가들은 '저수지의 개들'이 영화적 공식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그의 정서를 오롯이 담은 수작이 된 것은 비디오 가게 점원 시절부터 쌓은 내공이 한꺼번에 분출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 뤽 고다르 이후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칭송을 덧붙였다. '저수지의 개들'은 저예산 독립영화로 일본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90년대 할리우드의 비주류, 선댄스영화제의 젊은 분위기를 이끌며 하나의 현상이 됐고, B급 영화, 대중영화, 예술영화 그리고 미국ㆍ유럽ㆍ아시아 영화사를 거침없이 횡단하며 세계 영화계의 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이 두 편의 대성공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된 후 쿠엔틴은 더욱 활발한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1997년 세 번째 연출작 '재키 브라운'을 만든 뒤로 한동안 공백 기간을 가졌다가 6년 만에 '킬 빌'(Kill Bill)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영화계에서는 그를 '할리우드의 악동'이라고 부른다. 그보다는 '컬트영화의 지존'으로 더 자주 불린다. 그가 만드는 영화는 대부분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막대한 흥행 수익을 올린다. 그러니 영화인들이 그의 매력에 안 빠질 도리가 없다. 이제 그는 젊은 영화인들의 우상이 되었다. 왜 그들이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열광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이 질문에 답을 마련하기 위해 '쿠엔틴 타란티노 특별전'을 개최한다. '긴장하라! 그가 온다!'란 부제가 붙은 이 특별전은 3월 24일부터 4월 3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열린다.

상영작에는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비롯해 '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 '킬빌', '킬빌2', '데스 프루프', '버스터즈 : 거친 녀석들' 등 그의 장편 연출작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또 옴니버스작 '포룸'도 상영된다. 작품을 보고 그를 평가하라. 이 특별전이 마련된 이유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상길의 연예퍼즐 news@tvdaily.co.kr / 사진=한국영상자료원,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