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부터 '올드보이'의 미도까지, 배우 강혜정은 그간 강렬하고 독특한 캐릭터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전작과는 달리 한층 차분하고 성숙한 캐릭터를 맡은 영화 '루시드 드림'을 통해 공백을 깼다.

'루시드 드림'은 대기업 비리 전문 기자 대호(고수)가 3년 전 계획적으로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이용, 감춰진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아 범인을 쫓는 기억추적 SF 스릴러다. 강혜정은 주인공 대호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루시드 드림을 돕는 정신과 전문의 소현 역을 맡았다.

강혜정은 '루시드 드림' 속 자신의 캐릭터를 "이지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지금까지 맡아본 역할 중 가장 전문적인 캐릭터"라고 정의했다. "그간 연기해 온 캐릭터들이 너무 특이해서 무던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는 한다"며 말문을 연 그는 "예전의 충무로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유행을 타는 장르만 성행하면서 현실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만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 놨다.

그가 이처럼 획일화된 영화 시장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등장한 '루시드 드림'의 시나리오는 SF물을 좋아하는 강혜정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 "CG가 워낙 많고,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그렇다면 감독님의 이미지를 믿고 따라가자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강혜정은 '루시드 드림'이라는 낯선 개념을 익히기 위해 대학 시절 보고서를 제출하듯 공부를 이어갔다고 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김준성 감독이 전해 준 자각몽, 공유몽에 대한 자료들을 익히고 포털 사이트의 검색을 통해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아리의 존재도 알게 됐다고.

하지만 정작 발목을 잡았던 것은 '루시드 드림'이라는 단어 자체였다고. "루시드 드림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박사 역할이니 멋지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발음은 버벅대고, 결국은 원어민의 도움을 받아 혀를 굴렸다"는 그는 "자연스러운 발음을 위해 계속해서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며 웃어 보였다.


강혜정이 스크린에 돌아온 것은 단편영화 '가불병정' 이후 꼬박 3년 만이다. 그간 남편 타블로와 딸 이하루가 함께 출연한 KBS2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종종 얼굴을 비췄지만 배우로서의 활동은 오랜만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루시드 드림'은 커녕 눈 감고 '딥 슬립' 하자마자 꿈도 못 꾸고 아침이 밝는다"며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은 강혜정.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소설 속 장(章)으로 나눠 설명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보내던 자신의 20대가 '멋진 배우로 살겠다'는 목표로 가득한 장이었다면, 30대인 지금은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됐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은 제 인생에서 분명 중요한 장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저변에는 20대 때의 꿈을 지속해 나가는 것. 숙제가 하나씩 추가되는 거죠."


배우 강혜정과 엄마 강혜정으로서의 일과를 병행할 수 있는 원동력 또한 숙제를 해내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감'에서 나온다는 그다. "가정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은 다 해내고 싶다"는 그다. 때문에 배우로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고, 새로운 목표를 찾는 일에 매진 중이라는 설명도 더해졌다.

"배우라는 직업은 항상 변화무쌍하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딱히 미래에 두고 있는 지향점은 없다"는 강혜정은 "다만 무엇을 하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움직이고, 거품이 빠진 배우의 자리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소위 '주연 배우는 주연만 맡아야 한다'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저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배우로서의 소신이 묻어났다.

"전성기를 겪은 지 10년이 지났어요. 당연히 그 시절을 추억해 본 적도 있지만, 저는 그 시절이 이 긴 인생에서 단순한 터닝포인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쉽다거나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 대신 새로운 걸 계속해서 꿈꾸고 싶어요. 인생이 이렇게나 긴데, 뭘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새롭게 찾아올 다른 기회를 잡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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