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어떤 실수나 잘못이 발생할 때마다 강력한 비난을 쏘아대는 입장이지만 연예계, 특히 가요계가 얼마나 엄혹한 곳인지 잘 알고 있다. ‘산업’이란 단어가 붙으며 불가피하게 하나의 상품, 소비재가 된 아이돌들이 거대한 환대를 받다가도 한순간에 어떻게 추락하는지 혹은 어떻게 서서히 사라지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온 과거의 아이돌, 일명 조상급이라 분류되는 그들이 한 없이 반갑다.

드디어 H.O,T.의 콘서트가 성사되었다. 그것도 2001년 마지막 공연을 한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무한도전’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17년 만에 지킨 그들이 크나큰 결심을 한 것이다. 덕분에 팬들은 아주 오랜만에 흰색 풍선을 들고, 기억 속의 그 장소에서 ‘오빠들’과 함께 과거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H.O,T.뿐만 아니라, 신화와 god, 젝스키스까지지 컴백을 앞두고 있다 하니, 하반기 가요계는 우리들의 추억으로 가득 찰 예정이다.

소회의 의미 외에도, 보이그룹의 조상급에 해당하는 이들의 컴백은 현 가요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맥락을 차지한다. 걸그룹이 장악한 오늘날 우리의 여름을 들여다보자. 워너원을 비롯한 보이그룹들이 약진을 보이긴 했다만, 여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귀환하여 여름을 지배하고 있는 건 역시나 각종 걸그룹들이다. 물론 어쩌다 보니, 시기와 상황이 이리 되었다 할 수 있겠다만, 보이그룹의 약세는 꽤 오랜 문제다.

컴백을 하고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으면 그만큼의 수확이 있어야 하는 까닭에, 이들의 귀환 시기는 전적으로 소속사가 결정하는데, 되도록 경쟁력이 높을, 하늘의 운이 닿을 만한 시기를 잡으려 노력한다. 자본은 한정되어 있으니 좀 더 가능성이 높은 그룹들이 내놓아지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정에서 대부분 보이그룹들이 걸러진 게 아닐까 싶다. 속된 말로 걸그룹이 장사가 더 잘 되는 쪽이라 선택되었단 것.

활동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보면, 운 좋은 몇몇 그룹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가요계의 엄혹한 생존법칙에 따라 조용히 해체하거나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악재와 위기 등을 이미 겪고 넘어선 이들의 귀환은 가요계 전체는 물론이고, 아이돌 가수들과 지망생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조상들이 미리 걸어갔던 스타로서의 길을 되짚어보며 자신이 현재 겪는 고통이 당연하단 격려와 화려한 시절은 한 순간에 불과하니 연연할 것 없다는 깨달음 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연찮게도 돌아온다는 조상들이 모두 보이그룹 출신들이다. 걸그룹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지만 이것도 하나의 흐름일 뿐이고 영원한 기세는 아니라는 시선을 선사해주니, 현재 보이그룹들에게는 그들의 현존만으로도 대단한 위로다. 심지어 H.O.T.는 재계약 문제에서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멤버들 사이에서 불화가 생기며 해체 이후 한동안 서로 보지 않고 나누어져 활동했던 그룹이다. 그러했던 이들이 한 무대에 서다니, 각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말 못할 관계적 갈등에 대해서도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격이다.

그래서 더욱 응원이 나온다. 그저 순간의 화려함만 보고 날아든 어린 후손들에게 낡지만 단단한 희망이 되어주길. 즉, 매순간의 경쟁이나 그것에서 찾아오는 좌절감 혹은 아이돌로서 그리는 어떤 성공적 결말에 관한 환상에 휘둘리기보다, 아이돌이 되겠다며 꿈을 꿨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소환될 아름다운 기억이 되리란 것. 돌아온 낡아서 단단한 보이그룹들이 채우는 후반기 가요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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