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한 소녀가 있다. 영주라는 이 소녀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나 기구해 절로 숙연해질 정도다. 한날 한시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고모라는 사람은 이 소녀에게 집을 처분하라고 윽박을 지른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라고 있는 남동생이 사고를 쳐서 합의금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영화 ‘영주’는 주영주(김향기)가 처한 현실에서부터 이야기가 출발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주는 동생의 합의금을 마련 하려다가 되려 사기를 당하기까지 한다. 감독은 매정하다고 할 만큼 영주를 극단적인 처지로 몰고 간다.

나락으로 떨어진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앗아간 가해자를 찾아간다. 물론 교통사고 가해자인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은 영주의 정체를 모른다. 영주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상문과 향숙의 가게에서 일하던 중 동생의 합의금을 위해 가게의 돈을 훔친다. 그러나 향숙은 그런 영주을 혼내기 보다는 손에 돈을 건네주며 용서를 한다. 이후 영주와 향숙의 관계가 변화를 한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맛은 영주와 향숙의 관계가 달라지면서부터다. 영주에게 있어서 상문과 향숙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가해자이자 원수다. 그러나 영주는 원수와 다름 없는 향숙과 함께 하면서 심적인 안정을 찾는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는 두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때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향숙 역시도 마음을 연 영주로 인해 변화가 생긴다. 대표적인 변화가 두 사람의 웃음이다. 상문은 영주가 오고 난 뒤 향숙이 오랜만에 웃게 됐다고 영주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영주 역시 향숙을 엄마처럼 따르며 웃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하는 지점에서 한없이 어둡기만 한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허나, 두 사람의 관계가 갖는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주가 상문과 향숙에게 자신이 상문이 죽인 이들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또 한 번 영화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영화는 가해자가 무조건 악인이라는 편견을 깨게 만든다. 가해자 역시도 상처를 받은 이들 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의 상처와 가해자의 상처를 서로 이해하는 순간 진정한 치유와 화해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영화에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의 진폭이 그리 크지 않아 밋밋한 느낌을 준다. 더구나 섬세하게 그려왔던 감정선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 이로 인해 이야기 끝에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여운이 줄어드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럼에도 김향기와 김호정 그리고 유재명이 보여주는 연기 호흡은 영화의 밋밋한 맛을 어느 정도 덜어낸다. 김향기는 복잡한 감정에 혼란스러운 영주의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이로 인해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경계에 서있는 영주가 느끼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김향기의 모습을 통해 새삼 13년차 배우 저력을 느끼게 한다. 영화 막바지에 보여준 처연한 모습 역시도 김향기라는 배우의 연기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여기에 영화 ‘화장’을 통해 삭발 투혼을 했던 김호정은 시종일관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얼굴로 등장해 가해자임에도 인간미 넘치는 향숙의 모습을 그려냈다. 또한 유재명은 죄책감과 슬픔에 싸여 있는 상문 역을 흡입력 있는 연기로 스크린에 펼쳐냈다.

영화 ‘영주’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영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