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일하 편집위원]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2012BIFF)에 75개국 304편의 초청작 중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부문에 선정되어 주목받는 작품이 있다. 작가 안정효의 동명 중편 소설을 영화화 한 ‘낭만파 남편의 편지’(Love in 42.9㎡)로 최위안 감독이 연출, 각색, 제작한 영화다. 2009년 ‘저녁의 게임’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영상미학 부문의 눈길을 끈 최 감독은 BIFF에선 ‘볼레로 기법’이라는 다소 생소한 실험영화로 마니아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볼레로 기법’은 안정효씨가 소설을 쓸 때 동의어 반복을 통해 권태로운 일상을 표현하면서 부부간의 섬세한 심리를 구축하고자 한 기법을 말한다.

영화 ‘낭만파 남편의 편지’를 마치고 최위안 감독은 “하나같이 디지털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손은 이미 글쓰기 기능을 상실한 것 같다”며, 편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일반적 패턴의 타협적인 영화로 만들어보려다 시종 내레이션으로 일관하는 비타협적인 영화로 만든 것은 ‘디지털, 자본, 맹목’에 대한 무의미한 저항일 거라고 말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안정효님의 마술과 같은 언어의 유희를 포기하기 싫어서였다”며 각색은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방향에서 진행되었다고 했다.

이어 최 감독은 ‘2011년 지옥여행을 하다 지옥에서 만든 영화’라고 다소 엉뚱한 말을 꺼냈다. 사연을 물었더니 ‘낭만파 남편의 편지’가 나름대로 이 시대에 공감을 줄 수 있을 만큼 의미 있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지난 3년 간 제작비 3억 원 내외 영화를 만들려 했으나 아무도 알아주는 투자자가 없는데다, 개인적으로 극도의 생활고에 빠지고 말았단다.

그래서 영화를 버리고 택시운전을 할까 하다가 우연히 국내 100억짜리 프로젝트 영화를 보고 크게 실망, 갑자기 ‘오사마 빈라덴’이 생각났단다. 오사마 빈라덴이라면 지옥에 가서라도 뭔가를 하겠다 싶어, 돈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단돈 10원의 노잣돈을 거는 셈 치고 아는 선후배들에게 말 그대로 “10원짜리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지옥여행을 함께 해보자”는 도움을 청했고 의외로 기꺼워 해주는 이들이 있어 일주일 만에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최 감독은 “결국 스태프, 배우들에게 빚을 진 것이지만 아무튼 그들이 도와줘 이나마 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며 그들을 “유난히 덥던 2011년 8월 지옥여행을 함께 해준 친구들이라 기억하고 싶다”고 힘을 주어 말한다.

그의 말대로 ‘지옥에서 만든 영화’의 산실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소재 대학로극장이다. 연극공연을 하기 에도 비좁은 자그마한 소극장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하자 막상 스태프와 배우들은 “감독이 미쳤거나,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기왕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으니 편하게 로케이션 촬영을 해보자는 염려어린 제안을 했다는 거다. 그러나 감독은 일언지하에 ‘노우’를 외치고는 “단 한 컷도 이 밖을 나가서는 안 되고, 밖에 나갈 돈도 없고, 밖으로 나가면 내 의도는 사라진다”며 끝까지 고집하고 3일 동안 꼼짝 않고 극장에 처박혀 그곳에 맞는 콘티를 짰단다.

그리하여 13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핑기법으로 생활공간과 아파트 광장을 만들고, 도로와 시장, 사무실과 카페 등 필요 공간을 만들어 냈다. 13평이란 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가능했을까가 궁금해진다. 그러자 최 감독은 “처음에 13평 남짓한 자그마한 공간, 사면 벽은 온통 검은 색이었다. 검은 색을 벗겨 내거나 감출 돈도 의욕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그곳은 내가 그리던 지옥의 모습이었고 숙명의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열변을 토하더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아이디어를 짜내 13평, 즉 42.9제곱미터인 그곳을 권태에 빠진 42살 결혼 9년차 부부의 우주공간으로 만들어 갔다”고 설명.

이처럼 작업을 하려다 보니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이 떠올랐다고 솔직하게 얘기한 최 감독은 천정이 낮아 작업하기 정말 힘든 공간이었고 “오히려 라스 폰 트리에 그가 부러웠다”고 말한다. 다행인건 너무나 열악한 작업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적용해야했고 결국엔 다소 허접하지만 나름대로 ‘도그빌’과는 다른 독창적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낭만파 남편의 편지’는 10월7일(CGV센텀시티5관) 그리고 10일,12일 (롯데시네마센텀시티5관) 등에서 3회 개봉 된다. 그런데 관객이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10원짜리 영화’라 했지만 극장 티켓은 10원이 아니란 사실이다.

공간 42.9 제곱미터에서 영화를 완성한 최위안감독.

[티브이데일리 신일하 편집위원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