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1년 만에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문채원(28)은 연기 외적으로도 한층 성장한 모습이었다. 예전과 똑같은 미소라 할지라도 그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또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쌓은 경험의 크기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나날이 커져 가는 연기 욕심만큼이나 생각과 고민이 많아진 문채원이 정확히 말해주고 있었다.

KBS2 드라마 ‘굿 닥터’(극본 박재범, 연출 기민수)는 문채원에게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미 ‘착한 남자’를 통해 연기자로서 한 발 도약을 하기는 했지만, 의학 드라마는 문채원에게 높은 산 같기만 했다. 물론 탁월한 선택과 노력으로 빚어낸 연기력, 배우 스태프간의 호흡 등이 조화를 잘 이뤄 좋은 결과를 얻어냈지만, 이 또한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굿 닥터’ 시놉시스와 대본을 읽고 따뜻함을 느꼈고, 평소에도 의학 드라마를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선택을 하게 됐어요. 만약 의학 드라마를 한다면 정치색이 많이 없고 남성적인 느낌보다는 예전 ‘종합병원’ 같은 드라마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참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게다가 자폐라는 소재가 신선했어요. 예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멜로가 있다면 독특한 구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의학 드라마에 멜로를 많이 건드려봤자 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작가님께서 그걸 정말 잘 써주셔서 연기자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울 따름이에요.”

문채원의 말대로 의학 드라마에 자폐라는 소재 때문에 멜로 부분에서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을 법도 한데 ‘굿 닥터’는 그 중간을 잘 찾아들어간 느낌이 다분한 드라마다. ‘힐링 드라마’라는 명칭에 맞게 끝까지 ‘착함’을 잃지 않았고, 박시온(주원)과 차윤서(문채원)의 사랑 또한 군더더기 없이 예쁘게만 그려졌다.

“다른 드라마는 멜로가 세면서도 애증 관계가 있었는데 ‘굿 닥터’는 정말 다 주고 베풀고 감싸고 아끼기만 했어요. 후배를 아끼는 마음으로 야단을 치긴 했지만, 계속 사랑을 준 느낌이에요. 그런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큰 스킨십이나 세다 싶은 장치는 없어도 이것 나름대로 켜켜이 쌓여가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20회 내리 사랑을 주는 멜로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문채원은 20회 동안 대본 안에 사랑을 듬뿍 담아낸 박재범 작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문채원은 “작가 선생님은 약간 곰돌이 푸 같으세요. ‘굿 닥터’를 하면서 10kg 체중 감량을 하셨지만요. 멜로 부분이나 자기가 생각할 때 재미난 장면이 있으면 대본에 하트를 남발하세요. ‘하트 뿅뿅’ ‘케미 케미’라고 적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대본 1, 2회를 읽었을 때는 당연히 여자 분인 줄 알았어요”라고 설명하며 웃음 지었다.


“제가 시청자로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밝은 느낌의 드라마는 ‘커피프린스’였어요. 근데 ‘굿 닥터’는 의학 드라마인데 ‘커피프린스’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단지 커피를 만드냐, 병원이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당연히 여자 분일 줄 알았는데 남자라고 해서 깜짝 놀랐죠. 이런 분이라면, 또 이런 느낌이라면 만약 멜로를 그려낸다고 해도 잘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정말 잘 써주셔서 감사해요.”

문채원은 특히나 윤서가 시온에게 사랑을 고백하다가 먼저 포옹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시온이가 윤서를 안아주는 장면보다 연기를 하기 어려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남녀 사랑 얘기는 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니까 ‘이런 식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건 떠오르는 그림도 없고 본 것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사람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고 공감해야 하는데, 윤서 입장에서 리드를 하다 보니 어려웠어요. 그래서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어요”라고 남다른 고충을 털어놨다.

B팀의 김진우 PD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톤을 다르게 잡아 보기도 하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는 것. 결국엔 너무 많이 시도를 하는 것도 비효율적일 수 있으니 편하게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촬영을 했고 그것이 오히려 더 예쁜 그림을 만들어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채원은 “저도 찍으면서 재미있었지만 어려웠는데, 정말 잘 봐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라고 덧붙이며 싱긋 웃었다.

또 문채원은 테이블 데스와 시온이 혼자 상상을 하며 윤서에게 고백을 하던 장면이 가장 마음에 아팠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문채원은 실제 자신은 윤서처럼 상대에게 저돌 적이는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고 리드를 하는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는 “윤서 혹은 은기처럼 제가 맡은 몇몇 인물들의 멜로는 제가 해보고 싶은 멜로에요. 하지만 드라마에서 해보고 끝이 나면 괴리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 참 대단들 하시다’ 싶은 거죠.(웃음) 촬영을 하면서도 여자가 이렇게 나오면 남자는 약간 한 발짝 물러서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죠. 드라마라서 좋게 봐주시는 거 아닐까요?”라고 조금은 소극적인 연애관을 전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착한 드라마고 사랑스러움을 불어넣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쑥스러운 장면도 많았었다고 말했다.

“착한 대사를 보면서 가끔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날이 갈수록 현실적이게 되고, 순수함을 잊을 때도 있는데 드라마 캐릭터는 착하고 순수하잖아요. 그래서 그 인물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저 혼자 부끄러운 것이 있었어요. 4개월 촬영을 하다 보니 빨래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내 몸에서 빠져나가야 할 것들이 씻겨 나간 좋은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그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착한 드라마라고 해서 연기를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작품이 세고 어렵고 아픔이 많아야 연기가 어렵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연기가 조금은 자연스럽고 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편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어요. 또 이렇게 하나를 더 배운 것 같아요.”


연기력만 향상된 것이 아니라 배우로서 가지게 되는 생각의 진폭 또한 넓어졌다는 것이 문채원의 반짝이는 눈빛과 똑 부러지는 말투에서 오롯이 느껴졌다. 문채원 또한 자신이 ‘굿 닥터’를 통해 성장하고 싶었고, 그 성장의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하다고 고백했다.

“저는 어떤 작품이든 슬럼프는 있지만 배우 자체가 퇴보를 하는 작품은 없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성장한다고 느꼈어요. 디테일하게 어떤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 속에서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어요. 이왕이면 큰 도움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시청자들은 ‘굿 닥터’를 보면서 연기로 평가를 하시겠지만, 제가 생각하기론 저의 성장은 다음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봐요. ‘착한 남자’를 통해 성장했다면 그건 ‘굿 닥터’에서 드러났을 것이며 ‘굿 닥터’를 통해 성장한 것은 다음 작품에서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제 다음 행보가 궁금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배운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려고 노력중이에요.”

KBS에서 주연을 맡았던 ‘공주의 남자’ ‘착한 남자’ ‘굿 닥터’가 소위 말해 대박을 냈기 때문에 문채원 또한 부담이 많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장르나 캐릭터에 도전을 해왔던 문채원으로서는 더욱 작품 선택에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저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못해볼 때 아쉬움을 느껴요. 얼마 전에 ‘화이’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남자들은 저런 것도 할 수 있으니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여자지만 새롭고 해보고 싶은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러다 보니 작품이 잘 되면 부담감이 생겨요. 어떤 걸 선택을 해야 나도 만족하고, 대중들에게 뻔 하지 않은 행보로 기억될까 하는 고뇌 말이죠. 그렇다 보니 저는 진짜 흥미를 끌 수 있고 만족도 할 수 있는 행보를 걷고 싶어요.”

영화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영화 한 편을 끌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한 문채원은 영화 속 구성원이 되어 그 안에 녹아들고 싶은 바람이다. 그리고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3년 연속 수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면 정말 감사한 일이겠지만, 신인 때부터 예쁘게 봐주신 많은 스태프들과 마음 편하게 일을 했고, 그래서 연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어요”라고 함께 작업을 한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시청자들께 고마운 것은 ‘굿 닥터’를 보면서 마음을 연 것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열고 봐주신 것이에요. 사실 의학 드라마를 하면 많은 것이 신경 쓰여요. 의학 용어를 잘못 말했다, 저게 아닌데 했다, 의사가 어떻게 욕을 하냐 등등. 그런데 이런 것 하나하나 따지면 드라마가 아닌 다큐를 찍어야 해요. 그런데 작가 선생님이 애를 정말 많이 쓰셨고 시청자들도 그런 마음을 다 아셨는지 더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굿 닥터’가 무사히 끝이 날 수 있게 시청자들께서 많이 도와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방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