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하홍준 기자] 허우 샤오시엔의 8년만의 복귀작인 ‘자객 섭은낭’은 무협영화다. ‘동년왕사’(1985)나 ‘비정성시’(1989), ’밀레니엄 맘보’(2001) 등을 통해 평범한 개인의 삶에 투영된 대만 현대사의 상흔을 조명해왔던 거장의 시선이 향한 곳은 뜻밖에도 9세기 당대(唐代)다.

‘자객 섭은낭’은 정혼자와 이별 후 자객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검객 섭은낭(서기)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위관료의 딸로 태어난 섭은낭은 전계안(장첸)과 정혼한 사이다. 그러나 야심가인 전계안의 어머니 가성공주(허방의)는 아들을 세력가의 딸인 전원씨(주운)와 혼인시킨다. 홀로 남겨진 섭은낭은 여도사 가신공주(허방의)에게 맡겨져 자객으로 키워진다.

한편 중앙정부는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여러 변방에 번진을 설치하고 절도사를 임명해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여러 번진 중 전계안이 다스리는 위박은 중앙정부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신공주는 섭은낭에게 전계안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섭은낭은 자객의 정도와 사랑이라는 일생일대의 기로 앞에서 흔들린다.


자객으로서 섭은낭의 캐릭터는 독특하다. 섭은낭은 세력가들의 권력다툼 때문에 자객으로 키워졌다. 자객으로 장성한 후에는 전계안의 본처 전원씨와 후처 호희(사흔영), 당숙 전흥(뇌진어)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암투극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진다.

섭은낭은 무공을 연마해 최고의 고수가 됐지만, 마음이 약한 탓에 결정적인 순간에 번번이 머뭇거려 일을 망친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한 채 어느 곳으로도 쉬이 마음을 두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한다.

이러한 섭은낭의 성격은 기존의 무협영화에서 비춰졌던 자객의 모습과는 다르다. 오히려 감독의 전작에 나왔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섭은낭 역시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서 희생되고 상처받는 연약한 개인일 뿐이라는 점에서 ‘동년왕사’의 아하나 ‘비정성시’의 문청과 닮아있다.

연출 스타일도 전형적인 무협영화와는 다르다. 유혈이 낭자한 전투나 현란한 장검의 춤사위, 빽빽이 솟은 대나무 숲에서 벌어지는 와이어 액션은 나오지 않는다. 단도를 쓰는 섭은낭의 움직임은 빠르고 절제됐다. 무사들의 전투 장면마저 정적이고 관조적이다. 카메라는 인물을 멀리서 보고(롱숏), 길게 담는(롱테이크)다. 감독은 이를 ‘리얼리즘’이라고 정의했다.

부서지는 햇살과 반짝이는 신록, 하얀 운무, 붉은 노을 같은 웅장한 자연 경광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나뭇잎 소리나 갈대를 흔드는 바람소리는 생기를 더한다. 칸 영화제는 거장의 복귀에 감독상으로 응답했다.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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