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하영민 칼럼] 결론은 시청자를 웃겼지만 그 내용은 찜찜하기만 하다. 그 웃음이 파안대소나 박장대소가 아니라 씁쓸한 비소(鼻笑) 혹은 비소(誹笑)이기 때문이다.

결방을 반복하던 MBC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의 길’이 시청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최소한의 예의 없이 출연 개그맨들에게 폐지 사실을 통보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또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은 ‘자체검열’의 의혹을 짙게 풍기는 특정 코너 삭제로 시청자들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3년 만에 부활한 ‘웃찾사’가 1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요즘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부활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와중에 생긴 ‘사건’이라 시청자들은 실망스럽고, MBC의 전횡에 헛웃음을 넘어서 분노가 치민다는 반응이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위무해주는 기능을 가진 방송사의 콘텐츠 중 매우 중요한 것이다. 지난 1999년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공개방송 체재로 제작방식을 바꿀 때 젊은 개그맨들을 ‘수혈’해 참신하고 공격적인 내용을 펼치는 대대적인 혁신으로써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의 저질논란을 잠재우고 개그 프로그램의 위상과 영향력을 높인 것은 코미디계의 일대 혁명이었다. 건전하고 의미있는 웃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더 큰 위로가 된 것은 물론이다.

1991년 개국한 SBS 역시 ‘꾸러기 대행진’ ‘좋은 친구들’ ‘코미디 전망대’ 등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그때 ‘개그계의 슈퍼스타’이던 심형래 등을 영입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하지만 당시 일주일에 3~4개씩 코미디 프로그램을 편성할 정도로 개그맨을 시청률 확보의 첨병으로 투입한 양 경쟁사의 노력과 기존의 노하우에 밀려 고전하다가 결국 2003년 ‘개콘’의 주역이던 개그맨 전문 기획사 스타밸리(현재의 코코엔터테인먼트같은 규모) 소속 개그맨들을 대거 끌어들여 ‘웃찾사’를 출범시키며 전환기를 맞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심현섭 등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의 대거 이탈로 위기에 봉착한 ‘개콘’ 제작진은 스타밸리와 첨예한 라이벌 관계였던 개그맨 박준형의 갈갈이패밀리 산하의 개그맨들을 중심에 세우고 신인 개그맨들을 투입하면서 오히려 30% 중반대로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듬해 ‘웃찾사’가 공채개그맨 등 신선한 인물을 중심으로 코너를 새 단장하면서 반격에 성공해 한때 전성시대를 이끌다 결국 2010년 10월 폐지된다.

SBS의 개국과 개그맨 스카우트는 KBS보다 MBC에 더 타격을 줬다. 한때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유했고, 그 명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MBC지만 ‘개콘’과 ‘웃찾사’의 시청률 양분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으로 정통 개그 프로그램을 거의 포기하는 모양새로 실질적인 항복을 선언해야 했다.

그러다가 2012년 10월 ‘코미디에 빠지다’로 회심의 반격을 노렸지만 역시 1년 반 만에 백기를 들어야 했고 그 와중에 ‘웃찾사’가 부활하자 ‘코미디가 빠지다’ 폐지 한 달 만인 지난 5월 ‘코미디의 길’로 명분과 전통을 이어가려 했지만 MBC는 스스로 큰소리 치고 스스로 꼬리 내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코미디의 길’은 전신인 ‘코미디에 빠지다’와 마찬가지로 2~3%의 시청률을 극복하지 못했다. MBC가 SBS 개국으로 거물들을 대거 빼앗긴 후 히든카드로 사용해 성공했던 이홍렬까지 투입할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매주 일요일 밤 12시 5분 방송이라는 편성상의 핸디캡을 극복할 순 없었다. ‘월요병’이라는 아주 흔한 일상의 생활패턴조차 고려하지 않은 편성 혹은 폐지 결정이었다.

한때 ‘예능의 왕국’ ‘코미디의 왕국’ ‘드라마의 왕국’이라던 MBC의 21세기의 행보는 심상치 않다. 1990년대 주말 예능의 선두주자였지만 죽을 쑤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나는 가수다’를 통해 부활시켰지만 결국 여러 가지 논란을 야기하는 제작방식으로 알아서 문을 닫아야 했다. 베끼기 논란을 야기한 KBS2의 ‘불후의 명곡’이 탄탄대로를 잘 달리고 있는 것과 당연히 비교가 되고 결론은 낯 뜨거울 따름이다.

그나마 가끔씩 주중 미니시리즈가 성공하는 배경은 외주제작 시스템 덕이 클 뿐 이미 ‘드라마의 왕국’이란 호칭은 MBC에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제작진이나 윗선에서 ‘코미디의 길’이 ‘개콘’을 누르리란 예상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목표는 ‘웃찾사’였어야 당연하고 그렇다면 편성을 금요일 11시대로 옮겼어야 마땅했지만 왠지 윗선은 월요일 새벽 12시 5분을 고집했다. 스트레스 받는 월요일의 지각을 피하기 위해 다수의 시청자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시각에.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코미디의 길’의 2.5%의 시청률은 ‘웃찾사’의 4.4%에 비해 단순비교로야 형편없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다. 콘텐츠 자체와 출연진의 문제가 전혀 없진 않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편성시간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불친절한 잦은 결방 이후의 일방적인 폐지에 훨씬 앞서 처음 고민하던 때부터 편성이동을 생각했어야 옳았다. 금요일 11시에 방송되는 ‘MBC 파워매거진’이 5%의 시청률을 올린다는 점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코미디의 길’이 최소한 ‘웃찾사’가 가진 시사풍자의 미덕과 품격 정도만 갖추더라도 4% 이상의 시청률은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MBC는 ‘코미디의 길’ 자리에 8주간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을 편성했다. 두 달 뒤에는 또 어떤 아이디어로 코미디를 두 번 세 번 죽일지 시청자들의 본질을 벗어난 궁금증만 키우고 있다.

SBS는 모처럼 흥을 타고 있는 ‘웃찾사’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3일 방송된 ‘웃찾사’에서 ‘LTE뉴스’가 삭제된 것. 이에 대해 SBS 관계자는 13일 언론에 ‘검열이 절대 아니고 사실이 왜곡된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고 해명한 바 있다.

녹화된 ‘LTE뉴스’에는 OECD 통계를 논하며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GDP 대비 1위인데 이것이 사교육비 1위로 방송됐고,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망이 원인 불명 사망인데 말조심해야 된다’는 표현이 나가면서 실종 사망 1위로 오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는 것.

이를 통해 지나친 사회 불신을 조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 같아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었다고.

그런데 지난 6일 방송된 ‘LTE뉴스’ 코너가 재방송 및 유튜브 채널에서 삭제돼 여전히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는 게 시청자들의 반응. 당시 방송은 세금 문제, 청와대 인사 문제, OECD 통계 지표로 본 사회 문제 등을 소재로 다뤘다.

이에 제작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누리꾼은 ‘자체검열’의 의혹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평소 ‘LTE뉴스’가 날카로운 사회 풍자를 담아왔기 때문이다. 작게는 언론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크게는 정치권의 고위층을 겨누며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다.

물론 SBS는 민영방송이다. 언론 고유의 기능에 충실하기보다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돼도 ‘우린 민방인데’라고 항변하면 그뿐이다. 시청자는 그냥 외면해서 시청률 하락으로 광고가 떨어져 자연스럽게 문 닫게 만드는 방법 밖에는 견제할 바가 없다.

이런 시장의 법칙을 잘 알기에 SBS는 그동안 최소한 보도프로그램에서만큼은 ‘편파’나 ‘눈치’로부터 비교적(정체성에 비해)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SBS가 ‘LTE뉴스’같은 오락콘텐츠에서 날카로운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 시청자들 역시 SBS에서 그런 카타르시스를 구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SBS는 ‘LTE뉴스’를 허락했고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코너에 중독돼 갔다. 최근 방송 중 ‘담배에 대한 세금이 오르니 끊어야 하고, 자동차세가 오르니 차를 팔아야 한다’더니 주민세마저 오르는 데 대해서는 ‘떠나야지’라고 모든 걸 포기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는 압권이었다. 이렇게 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민영방송이라면 KBS와 MBC도 민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전성기이던 2004년 후반기의 ‘화상고’ ‘그런거야’ ‘택아’ ‘그때그때 달라요’ ‘행님아’ 등의 코너만큼의 시청률은 못 올리지만 한 두 코너를 제외하곤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새로운 시청자들을 슬금슬금 끌어들이고 있는 ‘웃찾사’다.

이런 잔치 분위기 속에서 석연찮은 행보는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물론 SBS 관계자의 해명이 옳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신중한 제작방식도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가 납득할 만한 해명 혹은 설명이 아니라면 내부적인 문제가 없지는 않은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개콘’의 독주가 반갑지 않기는 MBC와 SBS만큼이나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왜냐면 요즘 같은 다채널 시대에 채널선택의 여지가 없이 ‘개콘’에만 익숙해지는 것은 지루하고 시청료가 아깝기 때문이다.

SBS는 공영방송이고 기간방송인 KBS가 내보내는 ‘개콘’의 ‘닭치고’를 봐야 한다. 그 속에 ‘돈 되는 고급 개그’의 답이 있다.

[티브이데일리 하영민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프로그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