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미투 운동이 연극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투 운동 양상은 본연의 의미를 잃어가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최근 불거진 성추문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Me Too(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과거 이윤택으로부터 당한 성추행을 폭로 했다. 17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윤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글이 게재된 바 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연달아 고발한 현상이다. ‘미투 운동’은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규모와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들과 함께 연대 의지를 밝히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윤택 기자회견은 ‘미투 운동’, 본연의 취지와는 많이 벗어나는 모양새였다. ‘미투 운동’은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의 규모와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운동이었다. 더구나 최근 ‘미투 운동’은 권력형 성폭력의 심각성에 주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월적 지위와 강압으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윤택이 피해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태도를 엿볼 수 있게끔 만든 질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허나, 이날 기자회견에는 성폭력의 규모와 심각성,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는 상관없는 질문들이 기자회견의 본질을 흩어놓았다. 밀양연극촌 축제, 이윤택 본인 소유의 소극장 규모, 연극계 은퇴 여부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분, 박근혜 블랙리스트 1호가 이슈로 떠오르는 등 이번 사건을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과 함께 연대 의지를 밝히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원로 연극 연출가의 성추행 사건이라는 뜯기 좋은 고기가 등장하자 다른 연극계 성추행 논란이 소리 소문도 없이 쏙 들어가 버렸다. 대표적인 것이 연극 배우 이명행의 성추행 논란이다. 이명행은 성추행 논란으로 공연 중이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 하차했다. 그럼에도 이번 이윤택 성추문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얽히고설킨 듯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적인 것만을 남겨 놓고 모두 떼어 놓고 보면 오히려 명확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윤택 앞에 붙어 있는 원로 연극 연출가니, 극장 소유주니 등을 떼어 놓고 보면 그는 이번 사건에서 ‘성추행 가해자’, 그것도 권력을 앞세운 ‘성추행 가해자’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폭로한 이들은 ‘성추행 피해자’일 뿐.

다시 말해, 연극계의 성추행 피해자들이 권력을 앞세워 성폭행을 자행한 가해자들을 폭로한 것이다. 개개인, 누구 한 명의 문제가 아닌 연극계 전체의 만연한 성추행, 성폭행을 뿌리 뽑고 근절하는 것. 그것이 ‘미투 운동’의 진정한 마침표가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