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나라서 가능한 것, 내가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야말로 모든 사회인들의 숙원 아닐까. 황보라는 이미 자신이 오래도록 몸 담아온 배우 시장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기 디테일을 찾아낸 듯하다.

황보라는 2003년 SBS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오리지널 배우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을 전공한 그는 전공자답게 연기의 기본기가 탄탄한 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간시장’ ‘토지’ ‘변호사들’ ‘비밀남녀’ ‘레인보우 로망스’ ‘마이걸’ 등에서 조연으로 TV 드라마 현장의 분위기와 업무 방식을 천천히 습득해왔다.

일명 ‘왕뚜껑 라면’ CF로 인지도를 높인 황보라는, 젊고 귀여운 외모를 다소간의 코믹 캐릭터로 승화했다. ‘아랑사또전’ ‘맏이’ ‘앙큼한 돌싱녀’ ‘미스터백’ ‘욱씨남정기’ ‘불어라 미풍아’ 등 로맨스, 판타지, 가족드라마, 스릴러 등 각 장르드라마를 가리지 않았다.

충무로에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좋지 아니한가’ ‘허삼관’ ‘소시민’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1급기밀’까지 그는 다 년간 체득해온 코믹 역할은 물론,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충무로 수요를 충족시키는 젊은 인재였다.

국내 작품에서 감초 역할은 대개 4050대 이상의 중년 남성 연기자의 소임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런 점에서 감초 역을 자처해 베테랑이 된 황보라의 필모그래피 전략은 더할 나위 없이 영리했다.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 오버 액션, 엉뚱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종국엔 미워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코믹 여성 캐릭터는 그가 만들어낸 완성형 업무 스킬이다. 타고난 귀여운 매력에 망가짐을 불사한 극강의 오버 연기를 더했다. 비로소 자신만의 블루오션이 탄생했다.

특히 지난 해 황보라가 선보인 MBC 예능드라마 ‘보그맘’은 그의 코믹캐릭터 해석력에 관한 정점을 보여준다. 극중 속물이자 푼수인 강남 학부모의 역할은 어디에서든 한 번은 볼 법한 인간 군상이다. 이에 그는 해당 캐릭터를 오버 액션으로 소화해냄으로써 오히려 캐릭터가 간직한 비애까지 암시해내는 내공을 보여줬다.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 캐릭터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현재 황보라가 출연 중인 케이블TV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극본 정은영·연출 박준화)에서 봉세라(황보라)는 주연들의 로맨스에 양념을 치는 서브 감초 역할을 맡았다. 지난 방송분에서 봉세라는 김미소(박민영), 이영준(박서준) 사이에서 만취해 “내가 부회장님 비서이고 싶다”는 속내를 고백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만취한 ‘진상녀’ 역할은 배우의 이미지가 여간 귀엽지 않고서야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지만, 황보라이기에 밉지 않았다.

드라마는 애초 웹툰을 원작으로 했기에 시청자들에게 자칫 허무맹랑하게 비춰질 위험도 있다. 때문에 황보라처럼 오버 연기를 생활연기의 기술로 활용하는 배우들의 활약이 더욱 지대하다. 이 같은 과한 코믹 장면들이 도리어 드라마의 웹툰 감성이나 B급 감성을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면서, 시청자들에게 특정 장르드라마의 정체성을 설득해내기 때문이다.

황보라는 여전히 젊은 30대 배우다. 필모그래피는 무수하고 신스틸러 역에 관한 수요는 무한하며 인생의 앞날은 창창하다. 어쩌면 중년 배우도 도달하기 힘들 코믹 연기 디테일에 일찍이 도달했다. 자신의 캐릭터를 알아보는 황보라의 안목, 황보라라서 할 수 있는 대사와 연기, 운보단 실력이 우세했다. 황보라는 언제나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입는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 MBC, KBS, tvN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