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는 일은 우리가 어쩌지 못했을지라도, 우리가 오늘 맞이하는 삶은 이제까지의 우리의 선택들이 모여 완성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건, 오늘의 장면을 만들기까지 이러한 선택들을 하게 한 우리 안의 ‘무엇’이다.

MBC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서 주인공 도진(장기용)은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마를 아버지로 둔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부모도 아버지가 죽였기 때문에 그녀를 마음에 품는 것조차 죄이며, 어딜 가나 사이코패스의 아들, 살인마의 아들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때때로 도진은 안쓰러울 정도로 세상의 비난을 고스란히 감당하는데, 이는 제 손으로 아버지를 신고한 후부터 시작된 아버지와 다르게 살기 위한 그의 절박한 몸부림이다.

도진의 몸부림을 더욱 고단하게 만드는 건 아버지의 죄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사람들의 잔인함이다. 사랑 받지 못해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인해 사이코패스가 되고 살인마가 되었다, 아버지의 자서전에 실린 거짓된 진실을 믿고 동정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도진은 ‘악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라며 단호하게 반박한다. 실제로 도진 또한 불우한 시절을 보내며 어른이 된 사람이니까, 만약 불우한 상황에서 자랐다고 누구나 아버지처럼 된다면 자신에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것 아닌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수십 년 뒤 어떤 커다란 불행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들러의 인간이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유년 시절의 경험과 인상, 태도가 어른이 된 후의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즉, 우리의 삶이 가지는 여러 선택의 방향이 실은 어렸을 때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게다.

도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버지와는, 혹은 아버지를 우상시한 형과는 다른, 좋은 방향의 선택을 했다. 형의 선택은 오로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한, 아버지를 닮기 위한 방향으로 이어져 결국 전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했다. 반면, 도진은 온갖 험한 소리, 모함들 다 들어가며 경찰이 되었다. 아버지와 같은 길은 절대로 걷지 않겠다는, 자신의 생을 향한 엄한 선포라 하겠다.

모든 심리학적 가설들을 뒤로 하고,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하고 이어갈 수 있었을까. 나무(남다름)였던 시절 만난, 좋아하는 여자아이, 낙원(류한비) 덕분이다. 자신이 어떤 가정에서 자라고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좋아해주는 아이의 존재가 나무로 하여금, 도진으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고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좋은 선택들을 하도록 이끈 것이다. 도진의 삶의 목적과 방향, 그가 추구할 가치는 아마 이 때 정해지지 않았을까.

“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때가 참 많았었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로펌변호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얼마 전 종영한 KBS 2TV ‘슈츠’의 주인공 고연우(박형식)가 한 말이다. 그는 우연치 않은 사건으로 변호사 최강석(장동건)을 만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인 강&함에 가짜 신입변호사로 입사하는 인물이다. 사실 변호사는 그의 오랜 꿈으로, 그의 놀라운 기억력과 명석한 두뇌가 충분히 이루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운명의 가혹한 손길로 좌절된 지도 오래였다.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은 했으나 꿈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비록 가짜여도 진짜 못지않은 변호사노릇을 했지만 그렇다고 가짜가 진짜가 될 리는 없었다. 결국 모든 게 탄로 나는 순간이 찾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뉘우치고 있지만 선처를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때문이지, 잘못된 기회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엉킨 거 천천히 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기회인 것 같습니다.”

매순간 들이닥친 가혹한 운명만을 원망했던 그가, 자신의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쪽을 선택했다. 도진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가짜인 자신을 진짜 못지않게 인정하고 바라봐준 사람의 존재가 연우로 하여금 이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제 그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장면들은 이 선택을 기점으로 변화될 터다. 아들러의 이론을 순방향으로 실현시킨 도진의 ‘무엇’이 ‘낙원’이었다면 연우는 ‘최강석’이다. 당신이 오늘 맞이한 장면을 만든 선택들, 그리고 그 선택들을 있게 한 당신의 ‘무엇’은 무엇인가.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