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SKY 캐슬’의 매력은 은연중에 말하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의 시선과 입을 빌려 속 시원히 터뜨려주는 데 있다. 예빈(이지원)은 자신이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다 보았음에도 내색 하나 하지 않는 편의점 점주에게 ‘왜 다 봤으면서 모른 척하냐’고 묻는다. 되려 점주는 의아하다. 모른 척해주는 게 더 유리하고 좋은 상황 아닌가.

어른들의 시점에선 그렇다. 훔친 걸 들키면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걸 피하기 위해 예빈엄마는 점주에게 얼마간의 대가를 지불한다. 이를 받은 점주 또한 큰 잘못도 아니고 약속대로 눈 한번 감아주면 아이에게도 좋은 일 아니냐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왜 모른 척을 하냐니. 어른의 이해관계로는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이 아이에게서 나온 것이다.

예빈이는 생각한다. 어린 자신이 보기에도 도둑질은 명백한 잘못인데, 이걸 아는 어른이 보고도 모른 척을 하다니, 그것도 엄마의 청탁을 받고. 처음엔 불만과 일종의 반항심으로 시작한 도둑질이지만 예빈이조차도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는 죄의 무거움을, 어른들이 그들만의 이해관계로 무마시켜버리고선 다행이라 여기라니 아이로서는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지구는 둥근데 왜 세상이 피라미드야!”
일명 ‘지둥왜피’, 세상의 구조를 피라미드로 설명하며 아이들에게 꼭대기에 오르라고 강조하는 아버지 차민혁(김병철)에게 아들 기준(조병규)이 피라미드 모형을 던지며 외친 말이다. 아버지로서는 자녀들이,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악착같이 공부하여 검사가 되고 현재는 로스쿨 교수가 된 자신처럼 아니, 자신보다 더 높이 오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일 터다.

하지만 아이들로서는 도대체 피라미드가 뭐길래 형제까지 라이벌로 여겨야 하며, 친구의 불행을 기쁨으로 여겨야 하는지, 삶은 서로를 짓밟기 위해 존재하는 건지, 그렇다면 너무 절망적이고 불행해서 아버지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상을 피라미드에 비유하기에는 우리가 두 발로 밟고 선 지구가 너무 둥글다.

여기에 또 다른 아이, 수한(이유진)의 말을 보태 본다. 차민혁의 피라미드 원리가 감동 깊은 나머지 수한의 부모도 피라미드 모형을 집안에 들여 아들에게 보여준다. 꼭대기가 가장 좋은 곳이니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묻는 부모에게 아들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 왕의 무덤이었단 점을 주목하여, 왕도 중간에 묻혔다며, 그러니 중간이 제일 좋은 곳이라고. 당연히 부모는 할 말이 없다.

세계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은, 쌓아온 시간이 있어 대부분 아이보다 지혜롭다. 하지만 때론 그 쌓아온 시간 때문에 아이보다 어리석다. 쌓지 말아야 할 것도 그만큼 쌓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그만큼 잃어버린 탓에, 당연히 보아야 할 걸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걸 듣지 못하며 말해야 할 걸 말하지 못한다. 혹은 보아야 할 걸 보지 않고 들어야 할 걸 듣지 않으며 말해야 할 걸 말하지 않는다.

그럴 땐 아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의 눈으로 귀로 입으로 접하는 세계를 구해야 가려진 답을 찾고 흐릿해진 방향을 되잡을 수 있다. 아이는 살아온 시간도 짧고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어른과 동일한 세계에서 함께 삶을 살아내는 동료다. 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진정한 어른의 위상이 세워지며 세계는 둥근 제 모습을 잃지 않을 터다. ‘SKY 캐슬’이 던지는 귀한 깨달음 중 하나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