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오늘날의 방송 출연만큼 두려운 일이 없다. 대부분이 리얼버라이어티 및 관찰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불가피하게 편집의 힘이 커진 까닭이라 할까. 모든 말과 행동은 당시의 심리 상태나 관계의 미묘한 결에서 오는 뉘앙스를 보아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마련인데,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편집의 과정은 이를 놓치거나 지나치기 일쑤이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가 연출진의 의도나 프로그램의 방향에 맞추어 재구성되는 게 오늘의 방송 현실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고, ‘미운 우리 새끼’, ‘전지적 참견 시점’, ‘나 혼자 산다’, ‘동상이몽’ 등등 대충 떠오르는 것들만 열거해보아도 알 수 있을 터다. 고정된 패널들과 그날의 게스트가 앉아 편집된 자료화면을 보며 이런저런 코멘트를 나누는 식 아닌가.

한 마디 말을 보태도 영향력 넘치는 스타들인지라, 자료화면의 편집 방향에 맞추어진 그들의 코멘트는 대중의 시선을 프로그램의 것으로 끌고 오는 데 큰 힘을 보탠다. 그리고 보는 우리들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 의도된 감동과 재미, 때로는 분노를 느낀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다. 간혹 예상치 못한 감동과 재미, 또는 분노를 대중이 발견할 때도 있어, 해당 프로그램에 예기치 못했던 대박이나 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알만한 이야기를 왜 굳이 꺼내놓느냐면, 요 근래 일반인의 출연이 잦아진 방송가의 사정 때문이다. 보는 이들에게 자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의 방송 출연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장면으로 그 자체로 호기심과 흥미를 돋우며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일반인들의 반응은 기존의 익숙한 웃음을 탈피하게 만든다. 일반인들의 출연을 기꺼워할 뿐 아니라 추진하기까지 하는 연출진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문제는 대중의 입방아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는 연예인들도 종종 견디기 어려워하는 완악한 군중심리를, 일반인들이 편집된 시선에 의해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가까운 예로 고민 상담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나온 어느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순한 상담을 넘어 대대적인 비난을 들어야 했고, ‘미운 우리 새끼’의 홍선정(홍진영의 언니)은 방송에 나온 몇 장면으로 악플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들이 비난을 던져도 되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건 방송 내용이다. 보니까 당신의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더라,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인들도, 수많은 시청자들도 동일하게 보고 있더라, 그러니 당신은 우리의 비난과 분노를 받아 마땅하다, 뭐, 대부분이 이런 맥락이다. 이들에게 브라운관 밖의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며, 편집이란 틀에 갇힌 방송이 건드려준 자극적인 감정만이 상관할 거리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진중한 경각심이다. 방송의 정체성 자체가 편집에 달려 있음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에서, 연출진은 시청률만큼 중요한 게 편집의 방향이란 사실을 매 순간 되새기는 노력을 해야 하며, 섭외를 받은 일반인 출연자들은 최대한 모든 가능성,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될만한 모든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후 감수할 수 있을 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길 경우는 천태만상이겠다만, 적어도 서로 이런 신중한 과정을 거친다면 혹여 다가올 절망을 조금은 힘 있게 감수할 뿐 아니라 담담히 극복해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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