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늙어버린 몸을 가진 스물다섯 꽃다운 아가씨 ‘김혜자’, 그러니까 한지민의 김혜자를 연기하는 일, 게다가 몸이 바뀐 것도 아니다. 70대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스물다섯 아가씨를 연기하는 일인데 위화감이 전혀 없다. 배우 김혜자는 그야말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김수진)에서 가장 눈이 부시게 존재하는 배우다.

“그런데 받아들이기로 했어. 나한테 소중한 걸 되찾기 위해 겪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시간을 되돌릴 순 있으나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 가혹한 운명의 시계를 보유한 혜자는 수없이 시간을 되돌려 아버지를 살리는 대신 자신의 젊은 날들을 잃어버리고 만다.

스물다섯의 밝고 솔직하며, 마음 따뜻하고 장난기 많은 혜자는 배우 한지민이, 시간을 되돌린 대가로 받은 70대의 몸은 배우 김혜자가 맡았다. 즉, 김혜자가 할머니가 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밝고 따뜻한 시선과 스물다섯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간직한 혜자를 연기하는 것이다.

처음엔 늙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혜자처럼, 아무리 허구의 이야기라도 극 중 인물에게 닥친 시련의 험난함이 놀랍고 또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의 나이가 얼마인지, 늙은 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는 등 주어진 상황에 나름의 최선을 다해 맞닥뜨리는 혜자의 모습에 한편으론 감탄스러웠고 또 한편으론 저게 가능할까 싶었다. 대중의 이해와 몰입의 정도가 걱정스러웠다 할까.

김혜자의 혜자는 이 모든 염려와 걱정을 한 번에 잠재운다. 나이만큼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퍼 하며 수조에 갇힌 연어 생각을 하다가도 연어초밥이 먹고 싶다는 아주 갑작스러운 결론, 지극히 스물다섯스러운 결론에 다다르며, 자신을 알아본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며 뻥 같은 현실에 슬퍼하다가도 흥에 겨워 춤을 추는, 할머니이자 스물다섯의 혜자를 무리없이 소화해내고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시청하다 보면 김혜자에게서 정말 젊은 혜자가 느껴져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키우던 강아지 밥풀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엉엉 울 때도, 자신에게 오육십대만큼 젊어 보인단 속 모를 소리를 하는 의사의 멱살을 시원하게 잡을 때도, 단순히 애교 많고 장난 좋아하는 할머니라기보다 드라마의 설정대로 할머니의 몸을 한 스물다섯의 꿈 많고 활력 넘치는 젊은이처럼 여겨진다.

전해지는 감동의 깊이도 다르다. 일평생 고생만 시키다가 이젠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늙어버려 효도는커녕 짐이나 되지 않을까 싶은 혜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 도시락을 싸고 자신을 어르신의 범주에 넣으면서까지 어머니의 일을 돕는다. 부모의 고생을 보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또 여전히 의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부모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짙게 느껴지니, 그녀와 함께 우리 또한, 운명처럼 닥친 기구한 시간의 틀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게 되더라.

김혜자를 위한,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의 드라마라 할 수밖에 없겠다. 주인공 이름마저 김혜자니 말 다한 셈. 그녀의 연기력을 연륜이라 간단히 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배우 김혜자의 연기는 단순히 연륜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 연기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나오기 힘든 섬세한 감각이 배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김혜자가 맡지 않았다면 이토록 좋은 평이 쏟아질 수 있었을까. 여전히 ‘눈이 부시게’ 존재하는 배우 ‘김혜자’를 존경하고 응원한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