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자스민’으로, ‘A Whole New World’에서 ’Speechless’로 [무비노트]
2019. 05.30(목) 17:07
알라딘
알라딘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1992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속 공주는 사랑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며 사악한 존재로부터 왕국을 지켜내고, 2019년 디즈니표 라이브액션으로 재탄생한 영화 속 공주는 술탄, 즉, 왕이 되어 자신의 왕국을 지켜낸다. 실사 영화로 되돌아온 ‘알라딘’의 당당한 존재가치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손꼽히는 ‘알라딘’은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알라딘이란 소년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천애고아로 비천하게 살아가나 그 영혼만큼은 고귀한 알라딘이 어느날 우연찮게 얻은 램프에 담긴 신비한 힘, 요정 지니의 도움을 얻어 왕자로 분하지만, 결국 본인의 진실된 모습으로 사랑도 이루고 위기에 처한 왕국도 구한다.

하지만 2019년의 ‘알라딘’은 사뭇 다르다. 이야기의 초점이 참 묘하게 알라딘에서 자스민으로 이동한다 할까. 이는 알라딘이 사랑에 빠지는 대상이기도 한, 공주 자스민의 모습에 변화가 주어진 까닭이다. 애니메이션의 자스민이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왕국을 이어나가길 바라는 게 전부라면 영화의 자스민은 사랑은 사랑이고 이걸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술탄이 되어 왕국을 통치하길 원한다.

흥미로운 건 그러다 보니 자스민이 알라딘에게 사랑을 느끼는 계기도 선명해졌다는 점이다. 기존의 애니메이션은 정략 결혼이 싫어 궁을 탈출한 자스민이 우연히 만난 알라딘과 모험 가득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에 빠진다는, 어찌보면 일시적인 감정의 선을 표현하는데에서 그친다. 반면 영화에서의 새로운 자스민은 마치 세자가 잠행을 나가듯 백성들의 삶을 둘러보기 위해 나갔다가 알라딘과 마주치고 함께 아그라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서서히 호감을 느끼는 과정을 그려내어, 왜 서로가 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맥락을 좀 더 분명히 한다.

여성의 인권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아랍권의 공주인데 술탄이 되고자 하다니, 간단치 않지만 또 그리 간단치 않은 것도 아닌 설정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자스민이란 인물이 상당히 구체성, 현실성을 얻어 구현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알라딘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긴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욕망으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려 하는 절대악, 자파로부터 왕국과 세계를 지켜 낸다는 주된 위치에서, 지켜 내고자 하는 자스민 공주를 돕는 조력자의 위치로 옮겨진다.

“무거운 법과 규칙들이 날 족쇄처럼 옭아매네 자릴 지켜 목소릴 내지만 이젠 난 참을 수 없어”
“난 절대 침묵하지 않아 내 손발을 묶어도 주저앉아 울지 않아 부러진 날개로 저 높은 하늘을 날아가”

새로이 추가된 자스민 공주의 타이틀곡 ‘Speechless’도 인기다. 여성의 몸으로 위험하다고, 여성이 술탄이 된 전적도 없다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술탄이 될 자격이 충분함을 보여주며 부른 노래다. 그녀가 지금껏 대항해 온 것들에 대해, 앞으로도 대항해야 할 것들에 대해 절대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더 이상 가만히도 침묵하고 있지도 않겠다는 그녀의 강한 의지가 실린 이 노래는, 강탈한 자리이지만 어찌 되었든 술탄이 된 자파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는 부하들의 마음까지 돌릴 정도로 강렬하다.

단순히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라이브액션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만 보기에는 여러모로 의미 깊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시대의 변화만큼 결핍된 인식을 채워넣었다. 바로, 주체적인 여성상과 양성의 동반자적 관계에 대한 것이라 하겠다. ‘알라딘’을 추억하는 이들도, 추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반드시 보아야 할 이유다. 이제 ‘알라딘’은 ‘A Whole New World’가 아닌 ‘Speechless’로 기억되리라.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알라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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