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주거 공간으로서 집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외부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유형의 조건과 함께 우리의 삶이 켜켜이 쌓여 형성되어야 한다는 무형의 조건을 갖춘 공간으로, 자가이던 아니던 우리의 삶 자체를 대변하는 까닭이다. 즉, 어떤 이의 방 하나만 둘러봐도 우리는 그 이가 평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지, 현재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지 등을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공간에 영향을 주는 만큼의 영향을 공간 또한 우리에게 건넨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저런 물건들로 어지럽혀 있는 방은 보통은 원래 성향이 그렇다며 넘어가곤 하는데 어느 순간 보통 이상의 복잡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해당 방주인의 마음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신비롭게도, 잠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겸 마음 잡고 방 청소를 하게 되면, 과하게 부풀어 있던 감정이 가라앉아 평정심을 되찾은 눈으로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을 가득 채운 유형의 삶의 물건들이 무형의 삶을 압박해 왔음을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하나 대다수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삶의 방식은 각 사람이 삶의 어느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게 당연하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으레 주거 공간의 모습으로 알 수 있는 ‘삶의 조망력’의 유무에 관한 부분이다. 이 삶의 ‘나’의 것이 맞다면,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온전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적어도 ’나의 삶’을 조망하는 힘을 유지하려는 노력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다.

동일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진행 중인 예능프로그램이 tvN ‘신박한 정리’다. 의뢰를 한 연예인의 집에 찾아가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 구성으로, 집을 정리하는 과정이 눈여겨 볼 만한데, 공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물건을 무작정 내다 버리지도, 또 새롭게 들이지도 않는다. 정리라는 행위보다, 집을 의뢰인의 삶의 흔적과 가치관, 모습 등이 담긴 주거 공간으로서 존중하는 것에 먼저 집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다.

그래서 오래된 물건이더라도 해당 의뢰인의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면 버리지 않고,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저 묵힌 삶을 정리한 후 남아 있는 물건 안에서 새로운 공간을 조성할 뿐인데,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집이 가진 본질적 의미를 새삼 깨닫는 것이다.

지난 7일, ’신박한 정리’의 의뢰인은 배우 정은표와 그의 가족으로, 그들의 10년 간의 흔적이 담긴 집이 정리되는 모습은 지켜보던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안겼다. 복잡한 부엌이 깔끔해지고 넓어진 것, 창고를 변형시켜 만든 막내의 방이 제법 방 답게 변하고 협소했던 정은표의 공간이 쾌적하게 탈바꿈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묵힌 삶을 걷어내고 비로소 맞닥뜨린 삶의 진면목 앞에 선 그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 컸다. 덕분에 우리 또한 잊고 있던 혹은 잃어버렸던 '삶의 조망력'을 인식하게 되었으니, ‘신박한 정리’가 단순한 예능프로그램의 범주를 넘어서는 지점이라 하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