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상길의 연예퍼즐] 공원묘지에 가면 사연 없는 분묘가 없듯이, 법정에 선 피의자치고 사연 없는 사람도 없다. 왜 그럴까. 예나 지금이나,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모두의 인생은 드라마 같기 때문이다. 이 다양한 드라마를 영화작가들이 놓칠 리 없지 않은가. 법정 드라마는 그래서 언제나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도전! 나도 프로그래머’ 공모전을 열었는데, 여기서 2등을 차지한 소재는 ‘눈물의 여인, 사연의 법정’이었다. 컴퓨터 업계에서 쓰기 시작한 프로그래머는 영화나 TV에서는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기획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겠다”란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전문가들이다. 영화 프로그래머들은 세상의 수많은 사연 중 ‘법정의 사연’을 훌륭한 영화 소재로 꼽았다.

공모전 결과에 따라 한국영상자료원은 2015년 2월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의 VOD 서비스를 ‘눈물의 여인, 사연의 법정’으로 결정하고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을 받아 5편의 법정 영화를 제공한다.

VOD로 서비스되는 작품은 모두 5편으로 상영 당시 관객을 눈물의 바다에 빠뜨린 멜로영화들이다. 흑백필름 시절에 만들어진 윤대룡 감독의 ‘검사와 여선생’(1948)을 비롯해,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권영순 감독의 ‘표류도’(1960), 이원세 감독의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1974) 등을 2월 한 달 동안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검사와 여선생’은 마지막 변사로 알려진 신철의 이름으로 유명한 영화다. 여선생의 남편 살인사건을 맡은 검사가 법정에서 과거에 여선생이 불우한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베푼 선행을 이야기하며 “아무리 공정한 법정이지만 본 검사는 할 말이 없다”라며 구형을 포기한다. 검사가 사실상 무죄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김지미가 여선생으로 1950년대 최고의 미남배우였던 김석훈이 검사를 연기했다.

최초의 여자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에서는 여배우 최은희의 젊은 시절 미모를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작고한 황정순씨가 여대생으로 나온다. 최후 변론 장면에서 울지 않은 관객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감동적인 신파’(?) 작품이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여자가 모성을 포기하지 않고 이 사회를 버티는 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그녀의 범죄 뒤에 숨은 가지가지 인간적인 슬픈 얘기들을 이 변호인은 눈물 없이는 밝힐 수 없습니다.”라는 요지로 재판부의 자비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범죄추리물이기도 한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는 치정 삼각관계를 다루었고, ‘표류도’는 여성의 자립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은 해방정국 여간첩으로 유명했던 실존인물 김수임을 그려냈다.

이들 법정영화 서비스에 대해 공모전 당선자인 천기학 프로그래머는 “법은 힘 있는 자의 권리를 더 많이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약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데 그 존재 가치가 있다. 인간사가 계속되는 한 법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좀 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현실의 판결을 기대하며 이 기획전을 생각해본다”라는 기대를 밝혔다.

[티브이데일리 윤상길의 연예퍼즐 news@tvdaily.co.kr / 사진=‘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