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초록마녀 '위키드'가 관객들의 마음을 녹였다. 돌아온 서울에서 펼쳐진 7주 간의 공연을 통해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이자 명작임을 증명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위키드'(연출 리사 리구일로)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뮤지컬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 라이선스 버전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극은 '오즈의 마법사' 속 착한 마녀 글린다와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의 전사를 그려낸다. 도로시와 일행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서쪽 마녀가 사실은 진짜 '악'이 아니었으며, 두 마녀는 사실 어린 시절 친구였다는 독특한 상상에서 출발한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원작 소설의 내용을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기발한 상상력, 객석을 폭소케 하는 재치 있는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녹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엘파바는 세상의 편견과 무시, 그리고 아버지의 냉대 속에서 조금은 비뚤어진 성격을 지진 아이로 성장한다. 그런 그가 마법학교에서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밝은 글린다를 룸메이트로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진정한 친구가 된다. 그러던 중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가 숨겨오고 있던 음모를 알게 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자처하며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착한 마녀 글린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함을 연기하던 글린다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오즈를 대표하는 '착한 마녀'가 되고, 선함에 따르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정의를 위해, 그리고 엘파바를 위해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을 포기하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며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다.

두 마녀의 성장기는 시작과 동시에 극단을 향해 달린다. 주위의 무시를 받던 엘파바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정의를 위하는 마녀가 되고 싶었고, 글린다는 모두의 애정을 받으며 연인 피에로와의 행복한 삶, 마녀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두 사람의 전혀 다른 학창 시절, 이후 타의에 의해 서쪽 마녀가 된 엘파바와 스스로 선택한 착한 마녀의 길을 걷는 글린다가 만들어 내는 대비가 재미를 자아낸다.

결국 두 사람의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흔히 벌어지는 친구 사이의 우정과 갈등,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들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권력에 의해 언론과 여론이 통제되고, 엘파바가 한순간에 '악인'으로 낙인찍히는 모습은 현실을 무대로 옮겨 놓은 듯 사실적이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이처럼 탄탄한 스토리에 더해진 명곡의 향연은 귀를 즐겁게 한다. 여자 배우들에게는 최고의 노래로 손꼽히는 엘파바의 '중력을 거슬러(Defying Gravity)', 금발 마녀 글린다의 코미디가 돋보이는 '파퓰러(Popular)', 환상적인 에메랄드 시티의 모습과 화려한 연출이 일품인 '단 하루(one short day)' 등이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환상의 마법 세계를 그려낸 연출 역시 압도적이다. 무대 전면을 꾸미고 있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시계, 무대 상단에 위치한 붉은 눈의 드래곤은 오즈의 판타지를 무대 위로 이끌어 낸다. 단 한 번의 암전도 없는 조명은 때로는 초록색으로 물든 에메랄드 시티를, 때로는 도로시 일행이 여정을 떠나는 노란 길을 연출해 낸다. 하늘을 나는 원숭이 같은 독특한 오즈의 동물들을 표현해 낸 배우들의 무브먼트 또한 무대를 풍성하게 한 요소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녀야 하는 엘파바 역에는 지난 시즌에서 맹활약을 펼친 박혜나와 '복면가왕'에서 여전사 캣츠걸로 이름을 알린 차지연이 열연했다. 박혜나는 관록이 더해진 연기로 무대 전체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뽐냈고, 차지연은 흠잡을 곳 없는 가창력과 무대를 압도하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작품의 중심을 잡았다.

사랑스러운 '푼수' 글린다 역시 신구 캐스트가 조화를 이뤘다. 초연에서 글린다를 연기했던 정선아와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아이비가 금발 마녀로 변신했다. 정선아는 지난 시즌보다 깊이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철없던 소녀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글린다의 성장기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아이비는 이제 뮤지컬 배우라는 설명이 어색하지 않을 무대를 펼쳤다. 주 무기였던 섹시함을 벗고 깜찍한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위키드'는 27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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