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드디어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가 아이엄마가 되었다. 시리즈의 막이 내린 것이다. 앞으로 ‘르네 젤위거’만의 짙은 사랑스러움과 ‘콜린 퍼스’만의 서투른 낭만이 만들어내는 가슴 설레는 조화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길 뿐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 관한 이야기다.

스토리상의 애석함이 없진 않다. 미혼모라는 소재까지 끌어왔지만(아이의 아버지도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아무리 브리짓 존스라도 43세가 되도록 혼자인 여자의 삶은 부끄럽고 때론 비참할 수 있으며 결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게 최선이라는 결말(그리고 이 사랑스럽고 운 좋은 여자에겐 항상 백마 탄 왕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오히려 예전만 하지 못한 이야기의 사고방식이 많은 팬들을 실망으로 이끌었을 테니까.

평소 사회가 쥐어준 틀을 유쾌하게 깨주었던 여주인공 캐릭터와 인권변호사라는 설정을 지닌 남주인공 캐릭터의 영향인지, 단순한 로맨스 외에 많은 것을 담으려 한 시도도 엿보이긴 한다. 미혼모와 동성애 문제 등에서 비롯된 가족의 진정한 의미라던가, 여권 시위(여성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시위였지만 어떤 이들에겐 레즈비언들만의 욕망으로 비추어졌던)라던가, 수익을 위한 화제성만을 목적으로 두는 방송뉴스라던가.

하지만 정말 ‘그냥’ 담아놓고 보여주기만 했다. 마치 우리가 ‘생각 없이’ 흥미로만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들이나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들을 훑어 내리는 것처럼, 아는 지식이 많다 생각했는데 심도 깊은 질문 딱 두 번 만에 바닥이 드러나는, 알고 보면 ‘생각 없는’ 어떤 사람처럼. 물론 주된 이야기는 브리짓의 사랑 찾기이니까, 이 대중성 넘치고 사랑스러운 맥락을 중심으로 그저 배경처럼 담아두어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인 브리짓이 결국 신데렐라 스토리(백마 탄 왕자의 등장이 상당히 중요한)를 따른 삶의 결말을 맺었다는 데에 있다. 중심 맥락이 이렇게 되니, 미혼모인 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고 정치인에 당선된 브리짓 어머니나 페미니즘적인 노래를 하는 밴드를 변호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음악은 이해하지 못하는 마크(콜린 퍼스)의 속내가 뒤늦게 의심스러워지고, 회사의 수익을 위해 뷰를 높이는 뉴스를 만들겠다는, 어쩌면 기본 철칙에 가장 충실한 여자 상사를 브리짓이 그저 나이 어린, 철도 진정성도 없는 이로 만든 건 아닌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오해라면 오해일 테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은 영화가 가진 가치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미혼모여도 상관없어 보이던 브리짓조차 아이의 아버지 찾기에 급급해하고 일이 다 해결되자 이제 좀 뻐겨도 되겠냐며 남편과 아이 둘 다 얻은 기쁨을 승리자인 마냥 방출하는 장면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담아놓은 사회적 이슈들을 출산이 임박한 그녀의 사정을 방해하는 시위대 정도로만 이해하게 한다. 이는 그동안 브리짓이 해온 말들, 보여준 행동들과 정반대의 것이니 관객들은 그녀와 그녀의 일기에 담긴 진심을 오해할 수밖에.

많은 것을 담아보려 한 시도가, 브리짓 시리즈답지 않은 고리타분하고 밋밋한 영화의 시선(43세가 된 브리짓의 신체 나이만큼 영화도 나이가 들어버린 걸까)으로 인해 독이 되고 말았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 함으로써 브리짓의 삶과 사랑의 진정성에 흠집만 더해, 몇몇 팬들에겐 ‘브리짓 너마저’라는 배신감까지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본연의 유쾌하고 발랄한 성격, 재치에 있어서 넘치는 유연성과 여전히 생생한 두 주연 배우들의 매력이 팬들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애석함과 배신감을 어느 정도 덮고 가도록 돕는다는 사실이다. 감사해야 할 대목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적어도, 브리짓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며 내뱉은, 내 아들이 자랐을 즈음엔 진정성 있는 뉴스가 유행일 거라는 대사만큼의 진정성을 이야기에 담아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마무리가 참 아쉽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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