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가 외모를 포기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외모지상주의여서도,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익숙해서도 아니다. 이들이 두 발을 담그고 있는 방송 산업, 특히 아이돌 관련 산업 자체가 이들의 외모를 팔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는 깍닭이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외모에 신경을 쓰고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의 영역은 다르다. 외모를 중요시 하는 건 마찬가지나 그 기준이 좀 다르다 할까. 무조건 매끄럽고 아름다워야 할 일이 아니라 맡은 배역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담아 내느냐가 관건이 되어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연기력이 외모를 압도하는 때가 태반이다. 이미지와 연기력, 두 영역이 요구하는 게 다르다 보니 발생되는 차이다.

두 영역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들은 마치 무대 위에 서는 것처럼 연기를 대하는 오류를 저지르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겉모습이 출중한 배역을 골라 어여쁜 모습만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대중의 차별 어린 시선을 이끌어내는, 역효과를 일으킨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대중이 그들의 연기력에 대해 까다롭게 굴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예외도 있겠다만, 대부분의 대중은 그들이 연기를 전문적으로 습득하지 않은 아이돌 출신임을 충분히 감안한 상태에서 접근한다. 그저 배우의 영역에 용기 있게 도전한 만큼의, 보통의 무명 배우들이 못 누릴 특혜를 누리고 있는 만큼의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 뿐이다.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으리. 그렇다면 대중이 납득할 만큼의 진정성이란 도대체 어떻게 보일 수 있는가.

걸스데이의 ‘혜리’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역으로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며 연기의 세계에 진입했다. 그녀가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러했다. 제 옷처럼 편히 연기할 수 있는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역할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품의 반 이상을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로 활보했다는 점이 대중으로 하여금 그녀의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하게 만들었던 게다.

알다시피 혜리가 굉장히 뛰어난 연기력의 보유자는 아니었다. 어린 덕선에서 어른 덕선으로 넘어간 시점부터 보는 이들은 어색함을 느껴야 했으니까. 이후 출연한 두 작품이 그다지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한 것도 이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고. 즉, 어린 덕선은 혜리가 연기의 시작점에서 정말 운 좋게 만난, 자신과 참 잘 어울리는 역할로 그에 걸맞은 열정까지 얹어지니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하겠다.

혜리의 예에서 우리는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가 진정성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자신이 최대한으로 표현 가능한 역할, 그러니까 자신의 수준에 맞거나 본인과 상당히 비슷한 역할을 찾아야 하며, 다음으로는 아이돌에겐 중요하지만 배우에게는 덜 중요한, 화려한 외모에 집중된 시선을 내려놓는 것이다. 쉽게 말해 못생겨질 용기, 예쁘지 않아도 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사실 첫번째 조건은 운에 가깝다. 알맞은 배역을 만나기란 기존의 배우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다음의 언급한 조건은 순전히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다. 혜리가 예쁜 겉모습만을 고집했다면 ‘덕선’으로 대중의 인정과 사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들이 명심하여 따라야 할 모습이다.

혜리가 ‘청일전자 미쓰리’의 ‘이선심’ 역으로 돌아왔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맡은 배역을 대하는 모습이 덕선이었을 때와 유사하여 혜리에게 연기자로서 두번째 상승지점이 찾아왔나 싶다. ‘청일전자 미쓰리’의 ‘이선심’을 성공적으로 구현화하여, 이제는 배우 ‘이혜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물 유형으로 굳히길 바라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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