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이익을 위하여 혹은 여러가지 목적으로 훔쳐온 약이 재앙의 씨앗이 된다면 마음이 어떠할까. 그 죄책감과 책임감이 너무 막중하여, 만약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피해를 입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끝까지 합리화하며 회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걸려 있는 문제가 되고 말았으니 상황은 이제 백팔십 도로 달라진다.

tvN ‘해피니스’(극본 한상운, 연출 안길호)에서 배우 ‘조우진’이 구현하고 있는 인물 ‘한태석’의 이야기다. 제약회사 임원이던 시절, 그가 들여온 혹은 훔쳐온 약 하나가 안온했고 안온할 거라 믿었던 그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약을 복용한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목을 물어뜯고 피를 먹는 이상 증상을 보였는데 이들에게 물린 이들 또한 동일한 상태가 되어 감염자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광인병’이라 이름이 붙게 되는 이 병증이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한태석은 믿지 않았다. 해당 약에 대한 판매 허가를 코 앞에 둔 상태였기에 사실을 덮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아내가,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행복해하던 아내가 자신이 모시던 회사의 회장에게 목을 물려 감염되는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세계의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속한 세계 곳곳이 갉아먹히고 있었다.

한태석은 아내와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뭣 모른 이기심에 동조하여 벌인 사태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이 그나마 속죄할 수 있는 길일 테니까. 그리하여 예전에 군 정보요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이력과 회장의 이기적인 욕망을 이용하여, 광인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국가기관의 고위직으로 발령을 받은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광인병 사태를 막기 위한 혹은 멈추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그가 지닌 이와 같은 서사는, 한태석의 단정하고 명확하며 자신감 넘치는, 어떤 상황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 사이사이로 비추이는 분노 어린 얼굴이 대치를 이루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회장을 비롯한 일명 높으신 분들의 이기심을 대면할 때마다 속 깊은 곳에서 어찌 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아내와 아이를 위한 치료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유로 참고 또 참아내는 장면은 고통스러울 정도다.

비록 한태석도 이기심 문제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 이유란 게 결국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살리기 위함이니, 어떻게 보면 약을 들여온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맥락 아닌가. 하지만 본인이 먼저 살고 보겠다는 이기적인 집단과 가지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광인병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세계에 이 고통이 퍼진 데에는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는 한태석으로 하여금, 그가 이제까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별 상관없이 지나온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야 했음을 깨닫게 되는, 그래서 절대 이기적일 수 없도록 제어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인 것이다. ‘해피니스’가 한태석에게 얹는 주제의식으로, 덕분에 두 주인공을 필두로 작품이 벌이는 제대로 이타적인 사투는 한층 더 묵직하고 입체적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을 보는 이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오롯한 한태석이 되어준 배우 조우진의 역량이 고마울 따름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tvN ‘해피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