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충무로 상업영화신의 대표주자 곽경택(49) 감독이 열두 번째 장편 ‘극비수사’로 2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엔 사주로 아동 유괴사건 수사를 풀어낸 형사와 도사의 이야기다.

대표작인 ‘친구’(2001)를 비롯해 유혈이 낭자한 조폭 영화를 장기로 하던 그가 이 영화에선 기존과는 다른 성격의 작품 세계를 구현했다. 퉁쳐 말하자면 좀 착해졌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 감독은 “사실 이야기가 착해서 좋았다. 톱, 칼 없이도 좋은 영화를 내놓을 수 있단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사주를 수사에 접목해 실종된 아이를 찾아낸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도사 김중산(유해진)의 그 자체만으로 ‘영화 같은’ 팀플레이가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 곽 감독은 이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전작인 ‘친구2’(2013)를 준비하던 때 처음 접했다.

당시 6~70년대 시대상을 취재하던 곽 감독은 그때의 사건들을 기억할 만한 형사를 수소문하던 중 아버지의 추천으로 공길용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에서 곽 감독은 뜻밖의 수확을 거뒀다.

“사람이 옛날 일을 상기하다 보면 기억의 보따리를 열게 되잖아요. 공 선생이 ‘그 유괴사건 때 김중산 도사 아님 못 잡았다’란 얘기를 문득 꺼내시는데 저도 모르게 ‘잠깐만요. 도사라뇨?’라 했죠. 그때부터 녹음기를 켰어요.(웃음)”

‘극비수사’는 그렇게 출발했다. 곽 감독은 이틀 뒤엔 김중산 도사를 찾아 더욱 구체적인 얘기들을 전해들었고 이후 영화화를 결심했다. 현실감을 더 부여해야겠단 고민이 들 만큼 이 믿기 힘든 스토리에 매료됐다. 그는 손에 땀을 쥐며 전해들은 당시의 순간들을 가급적 가공 없이 스크린에 옮기고 싶었다.

때문에 영화는 여타 수사물들의 트렌드와 달리 기막힌 반전을 갖지도 리드미컬한 편집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에 영화가 다소 단순하거나 지루할 수 있단 우려도 있었지만 곽 감독은 “한데 이야기가 원래 이랬으니까.(웃음) 처음 접했을 때 난 굉장히 긴장감이 넘쳤고 충분히 자체만으로 긴박할 수 있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그 ‘감’을 믿고 드라마에 무게를 둔 채 극을 묵직하게 밀고나갔다. 볼거리는 미술로 채웠다. 시대고증의 문제를 떠나 작품의 분위기와 맞는 소품과 로케이션, 패션이 중요하다고 봤다. 곽 감독은 이 과정에서 “흠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강박증이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영화를 볼 때 그런 결점이 눈에 띄면 그 다음부터 작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에서 CG만 400여 컷이 들어갔다. 아파트 창문에 비치는 실외기도 CG로 일일이 다 지웠을 만큼 작은 부분까지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또 쟁쟁한 실력파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영화의 결을 더욱 두텁게 했다. 특히 처음 호흡을 맞춘 김윤석, 유해진과의 작업은 그에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윤석씨와의 작업은 정말 유쾌했고 따뜻했어요. 윤석씨와 내가 고향이 같고 연배도 비슷해요. 또래끼리 술 먹고 놀면 재밌잖아요.(웃음) 또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힐링도 됐고요. 뿐만 아니라 윤석씨가 치열하게 시나리오를 고민해오니 신이 더 강화되고 긴장감이 생겨 좋았죠. 해진씨도 마찬가지예요. 웃음이 필요한 때를 정확히 알고 현장 분위기를 기분좋게 만들어주곤 했어요.”



그렇게 닦고 또 닦는 심정으로 만든 작품이건만 개봉을 앞두고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할리우드산 대작 ‘쥬라기 월드’와 메르스다. 곽 감독은 이에 “내 머릿속엔 온통 메르스와 공룡밖에 없다. 메르스 걸린 공룡이 막 덤벼들 것 같다”며 엄살 섞인 농담으로 웃어 넘겼다. 이어 “맘 같아선 메르스를 다 흡입해버리고 싶다”고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했다.

“흔히 어른들이 ‘세상에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다’ 하잖아요. 물이 너무 깨끗하고 맑게 흐르면 그 위에 놀 만한 정자가 없고, 정자가 좋으면 물이 말라 있고요. 살다보면 두 가지가 다 맞는 경우는 사실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속상하기도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 본 투자배급사의 뜻을 묵묵히 따르기로 한 거죠.”

결국 이는 기우였다는 듯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침체된 한국영화 시장의 구원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완성도에 대한 호평과 더불어 흥행 성적까지 챙긴 곽 감독의 새로운 전성기가 다가왔다.

아울러 영화를 최근 국민들에 공포와 실망감을 동시에 안겨준 메르스 사태와 연결지어 보는 시선도 있다. 극중 생사가 달린 문제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느라 실적을 챙기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부패 형사들의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것. 이와 함께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본분에 충실한 공길용과 김중산의 모습을 통해 소신을 지키는 일의 가치도 다시금 주목하게 됐단 평이다.

이에 곽 감독은 “관리기관의 안이함이 국민들을 위협하는 사안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영화가 소신, 공직자들의 공 따먹기, 책임 전가 등을 이야기하다 보니 연결시켜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그동안 1~2년 간격으로 제법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늘 도전하길 망설이지 않았다. ‘흥행 감독’이란 타이틀이 그를 따라 다니지만 곽 감독은 “그런 게 있는진 모르겠다”고 민망해 하며 “절대 자만의 코드로 활용하지 않으려 한다. 내겐 아직 아무런 라벨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보다 진실된 것을 파야 제 삶이 의미있어지는 것 같습니다. 스태프들에게도 늘 얘기해요. 쉬우면 다 하지, 다 하는 게 뭐가 재밌느냐고. 어려워야 해냈을 때 성취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자세로 만든 영화로 또 한 번 명성을 공고히 한 곽 감독은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판타지 스릴러 장르물로 오는 8월 말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안주하지 않는 그가 또 어떤 시도로 관객들을 만족시켜줄지 벌써부터 뜨겁게 기대된다.

[티브이데일리 김진성 기자 news@tvdaily.co.kr/사진=권영민 기자, 쇼박스미디어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