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어떤 작품은 등장인물 이름부터 성격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배우 유세례도 '우리 갑순이'의 정만주 역을 맡아 정만 주다 떠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보내기엔 캐릭터에 대한 진정성도 감정 몰입도 아까운 배우였다.

유세례는 8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극본 문영남·연출 부성철)에서 정만주 역으로 출연했다. 정만주는 드라마 초반 신세계(이완)의 동료 의사로 등장해 주변 인물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점차 극이 전개되자 신세계의 첫사랑이었던 과거가 드러났고 결국에는 여공주(장다윤)를 제치고 사랑을 되찾아 결혼에 골인했다.

최근 티브이데일리와 만난 유세례는 처음부터 캐릭터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연기에 임한 것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문영남 작가와 '조강지처 클럽', '폼나게 살거야'를 함께한 인연으로 출연이 성사됐으나 '우리 갑순이'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캐릭터 이름은 '정만주', 말 그대로 세계에게 정을 주는 인물이다" 정도만 들었다고 했다. 대신 그는 "세계와 동료 의사고, 부모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까지만 들었다. 그런데 점점 만주와 세계가 좋아한다는 감정이 붙었다"고 말했다.

캐릭터들끼리 감정이 생기다 보니 정만주의 분량도 점점 늘어났다. 이에 대해 유세례는 촬영을 마친 뒤에도 얼떨떨했고, 감사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엔 이렇게까지 진전이 될 줄 몰랐다"며 "중반에 만주가 떠날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정말 이름처럼 정만 주다가 떠나지 않을까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털어놨다.

그랬던 유세례가 본격적으로 드라마 완주까지 준비한 것은 회식 후 문영남 작가에게 자세한 캐릭터 설명을 듣고 나서였다. 유세례는 "'우리 갑순이'가 10회 정도 방송되고 회식 자리가 있었다"며 "그 때 만주와 세계가 사랑하는 사이였고, 부모 반대로 헤어졌고, 집안 환경이 안 좋다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연 많은 캐릭터를 위해 유세례는 상대 배우인 이완과 잡담 없이 연기하며 감정을 쌓았다. 대본을 받는 순간부터 만주의 사연들에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저절로 감정이 이입됐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완과는 시작부터 끝까지 서로의 이름 대신 캐릭터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그 결과 이제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만주와 세계 때문에 가슴 아프다"고 말해 기쁘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만주에게 가슴 아픈 순간들만 있던 것은 아니다. 유세례는 정만주가 불우한 환경 중에도 세계를 만나 인생의 꽃핀 장면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그는 세계가 만주에게 냉면을 먹으며 프러포즈한 순간은 거창한 이벤트보다 소탈한 진정성이 느껴져 눈물이 났고, 마지막회에서 웨딩 드레스를 입은 장면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유세례는 "제 결혼식이 마지막 회에 구성돼 너무 감사했다. 배우로서 그런 기회가 흔치 않다"며 감격을 표했다. 이어 "장용 선생님이 '세례는 결혼 언제 하냐'고 물으시더라"라며 "비슷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저는 늘 '내년이 목표'라고 답하지만 그 내년이 항상 밀린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우리 갑순이'를 통해 작품에서 처음 웨딩 드레스를 입기까지 유세례는 다양한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2006년 방송된 드라마 '주몽'이 첫 드라마였으니 연기 경력만 10년을 넘겼다. 이에 연기를 시작한 계기를 묻자 유세례는 "이래 봬도 MBC 어린이 합창단 출신"이라며 웃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린이 합창단을 시작했고 어릴 때부터 방송국에 드나드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막연한 생각을 품었던 것. 그는 '뭐가 돼야겠다'는 생각 없이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한창 활동 중인 강은탁, 김민수, 조정석, 송창의 등을 동문으로 만나 연기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이렇듯 자연스레 시작한 연기였지만 순탄하지는 않았다. 유세례는 "중간에 일이 없던 때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그 때는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고민이 깊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일이 없다 보니 생각도 많아졌다. 나는 제작진이나 시청자에게 선택 받아야 하는 직업인데, 이렇게 선택 받지 못한다면 이 길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름인 유세례로 개명한 것은 그에게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주는 돌파구가 됐다. 유세례는 "'폼나게 살거야'를 하면서 이름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이름을 정할 때 주위 사람 70%가 반대했다. '그 이름 할 거면 그냥 목사나 하지'라고 하더라"라며 "다니엘, 성령, 성경 다 있는데 왜 세례가 안 되나 싶었다"고 당시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한 "결과적으로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지 그 뒤로 감독, 작가님을 비롯해 선배들도 극중 이름 뿐만 아니라 내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줬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개명을 통해 활력을 찾은 대신 유세례는 주연에 대한 큰 욕심은 내려놨다. 그는 "내가 더 감정을 쏟고 분량도 많은 역할을 하기엔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만 해도 유선 언니나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저렇게 많은 분량을 소화하고도 감정 이입을 잘 하는 걸 보면서 놀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세례는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을 표했다. 유세례는 "장르나 캐릭터에 구애 받지 않고 연기하고 싶다"며 아직 해보지 않은 공포, 스릴러 장르나 악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유세례는 '우리 갑순이'를 통해 "포용력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출연진을 보니 내가 선생님들이나 어린 친구들 사이에 끼일 만한 중간 나이, 연차가 됐더라. 당연히 선생님들께 잘 하고 어린 친구들에게 좋은 언니처럼 포용력 있게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선생님들이 워낙 좋으셔서 정말 많이 배웠다. 본인 신이 맨 뒤에 있어도 불평 한 말씀 안 하시고 후배들과 어울려 모두 기다려주셨다. 나도 그렇게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어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랜 시간 홀로 활동한 유세례의 이력은 그가 꿈꾸는 포용력과 배움이 끈기와 만난 순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 갑순이' 촬영 초반에 데뷔 10여 년 만에 첫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홀로 활동했다. 유세례는 "매니저가 없을 때는 직접 운전하면서 다녔다. 새벽에 샵에 들렀다가 촬영장으로 이동하고 의상도 준비하면서 '내가 이걸 다 했다'는 쾌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까지 했는데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눈을 빛냈다.

무엇보다 유세례는 배우로서의 목표로 "흰 머리 날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만 주다 떠날 줄 알았다가 종영까지 완주한 이런 배우라면 백발의 연기도 가능할 거라 기대한다.

"오래 오래 연기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정말 흰 머리 날 때까지 하고 싶다니까요. (웃음). 그래서 그런지 '이 역할은 싫어, 배역이 작아' 이런 마음은 전혀 없어요. 한 신이 나오면 어떻고 두 신이 나오면 어때요. 백발이 될 때까지 연기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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