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혜영 기자] 26살, 데뷔 21년차. 이질적인 두 성질을 담고 있어서인지 배우 고아성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독특했다. 20대 어린 나이에 '괴물' '설국열차'라는 걸출한 필모를 갖고 있음에도 과신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차분했으며 어쩐지 위축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는 강단이 있었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대중성 있는 비주류'같았다.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로 처음 드라마 종영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고아성은 "영화는 개봉 전에 하니까 보탬이 됐으면 하는데 드라마는 다 끝나서 뭘 말해야 하나 싶다"면서도 "그저께, 어제 계속 똑같은 얘기하다가 오늘만은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하고 싶은 거다. 어제 대본을 다시 봤다. 너무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일단은 스태프분들이 제일 보고 싶어요. 연락은 하고 지내니까 만나려면 만날 순 있지만 그 현장에서 같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순 없는 거잖아요. 촬영 현장은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다시 그 인원들이 모이지 않으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거잖아요. 유난히 호흡이 잘 맞고 유쾌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자체발광 오피스'는 시청률은 낮았지만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호평받았다. 고아성은 "그래서 시청자분들한테도 고마운 감정이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도, 세간의 관심을 받는 그런 드라마도 아니었지 않느냐. 근데 저희 배우들과 스태프분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끝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는 다 관심과 애정으로 봐주신 시청자분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고아성은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시한부인 줄 알았던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 역을 맡았다. 그는 전작이었던 영화 '오피스'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제목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있고 우려했던 부분이 많았다"는 그는 "많은 관객들이 보신 영화는 아니지만, 그 영화를 보시고 이미례라는 역할을 기억하시는 분이 기시감을 느끼실 것 같았다. 감독님께도 캐스팅 전에 말씀을 드렸더니 '나도 그 영화 봤어'라고 하시더라. '오피스' 때문에 오대환 배우도 너무 반해서 같이 하자고 했다면서 '그런 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라. 감독님 믿고 안심을 하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제가 평소에 밝은 사람이라고 인지를 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되게 자신감이 없었어요. 쾌활하고 활발한 캐릭터를 내가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은호원 대사 중에 그런 게 있어요. 어제 대본을 읽어서 다 기억나요. '아주 간단한 행복 법칙을 죽기 전에서야 깨달았다. 오늘만 행복하자. 오늘만 행복한 날들이 모여서 전체 삶이 된다' 이런 대사를 실제로 제 입으로 통해서 내뱉는데 약간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나도 오늘만 행복하게 살아볼까' 이런 생각도 해봤고 돌이켜보니까 지난 촬영 기간 동안 정말 밝은 사람으로 살아온 거예요. 원래 어떤 사람이었다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밝은 사람이었든 밝지 않은 사람이었든 촬영 3개월 동안은 밝은 시간을 보냈어요. 보낸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은호원을 통해서 작가님을 통해서 새로 깨달았죠."

고아성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는 점이 은호원과 비슷하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은호원의 방식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면 저는 그렇게 충동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할 말이 있으면 대사를 다 정리한 다음에 얘기한다. 사실 대사를 다듬다가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어쨌거나 원칙 아닌 원칙이 있다면 제가 격양되는 상황이 생겼다면 꼭 한 시간 후에 말한다. 감정적으로 정리가 된 후에 감정을 섞지 않고 해결하려는 편이다. 은호원처럼 바로 맞서서 얘기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은호원은 극 중 직장 생활 내 불합리한 상황을 모두 폭로하면서 보는 이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고아성은 이 같은 설정이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는 "초반에 사내 메일을 잘못 보내는 실수를 하지 않느냐. 저는 물론 미숙하지만 당당한 캐릭터의 매력을 봤지만 이 정도 스케일의 사고를 치면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실수하는 장치를 넣어야 될까' 생각을 해서 감독님한테 고민을 얘기했더니 '생각보다 사내 메일을 잘못 보낸 사람이 엄청 많단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저도 실수를 많이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그걸 극복하고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 않게 고민을 풀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모든 드라마에는 현실적인 요소와 비현실적인 요소가 둘 다 있다고 생각한다. 은호원 같은 캐릭터나 사내 로맨스라든가, 부장과의 연애라든가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되게 많지 않나. 생각을 해보면 저도 드라마를 볼 때 저랑 비슷한 상황, 아니면 제가 공감을 느낄 수 있는데서 드라마의 재미를 많이 느끼지만 또 어떻게 보면 경험해보지 못했던,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말을 대신 들으면서 위안을 얻을 때도 많았다. 그 두 가지 요소를 다 담고 싶었다.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셨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체발광 오피스'에는 시한부 설정이 있다. 워낙에 시한부가 자극적인 '욕받이' 소재인 만큼 고아성 역시 걱정이 컸다고. 그는 "극적인 장치지 않느냐. 개연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용한 장치지만 조심스러웠다. 이 드라마의 방식은 유쾌하게 풀어나가지만 저는 정말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고 매일 마음가짐을 했다. 저는 끝까지 호원이가 시한부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 감독님이 안 알려주셔서 전혀 몰랐다. 그 전까지 계속 (시한부라고) 믿었기 때문에 '오늘만 사는 호원이'라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용기가 생길 수 있었다. 그 마음을 1부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다. 11부쯤에 아니라는 게 나왔는데 그것도 유머러스하게 '간에 돌이 들었다고요?' 그런 식으로 장면이 그려졌다. 촬영을 하는데 시한부를 쌓아온 마음이 너무 두텁기 때문에 '저 안 죽어요? 살 수 있는 거예요?' 그 대사를 하는데도 너무 눈물이 나더라. 그때만큼은 정말 너무 슬프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본에서는 그렇게 우는 게 아니었는데 침대에 엎드려서 울었다"고 떠올렸다.

실상 극 중에서는 은호원이 아닌 도기택(이동휘)가 위암 2기 판정을 받았고, 수술 뒷이야기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즌 2를 위한 포석이냐"는 물음에 고아성은 "그랬으면 좋겠다"며 "마지막 대본을 받았는데 수술 후 도기택이 결과에 대해 말을 안 하더라. 그게 너무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다. 은호원이 시한부인 줄 알았을 때는 '은장도'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감독님한테 '제발 은호원과 장강호(인피니트 호야)가 그 사실을 알아서 도기택에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여건상 다 담질 못 했다. 기택 오빠한테 미안하다. 하지나(한선화)라는 멋진 여자친구가 있긴 했지만 은호원이 받았던 그 위로와 그 걱정, 제 몫을 못한 거 같아서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전했다.

고아성은 '자체발광 오피스' 속 여러 러브라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드라마의 장점은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반영을 할 수가 있다는 거지 않느냐"고 말문을 연 그는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많았다. 기택, 하지나 대리님 러브라인은 원래 있었지만 서우진 부장(하석진)과 은호원의 러브라인은 아예 없었다. 감독님이 처음에 시작할 때 '그런 러브라인은 없다'고 하셨는데 본 촬영이 들어가기 전, 테스트 촬영할 때 저랑 하석진 배우님 투샷을 잡아보시더니 '있어야겠다' 이러고 넣으셨다"고 밝혔다.

"저는 구분을 많이 지으려고 했어요. 서현(김동욱)을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종이 울리는구나' 반하면서 시작했잖아요. 서우진 부장님과의 러브라인과는 어떻게 구분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두 분 다 호감은 맞지만 서현한테 드는 호원의 마음은 팬심에 가까웠어요. 존경하는 롤모델이지만 로맨틱한 관계는 아니었던 거죠. 진짜 로맨틱한 관계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고 싶지 않게 되잖아요. 서우진 부장님은 호원이도 좋아하는지 모르고 지냈지만 알게 되고 나서도 팬심처럼 앞에서 표현할 수도 없어서 자기 마음에 확신이 없고 쑥스러운 모습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어요."

은호원은 극 말미, 서우진 부장에게 먼저 고백을 한다. 실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고아성은 "저는 전혀 아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반대다. 상대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 좋아하는 티도 안 난다. '말을 할까' 대사 다듬다가 그냥 가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용기가 없다"고 털어놨다.


1997년 4살 때 아역 모델로 데뷔한 고아성은 영화 '괴물' '설국열차' '우아한 거짓말',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등 굵직한 작품을 거치며 성인이 됐다. 그에게 '아역 배우'란 꼬리표에 대해 묻자 "떼고 싶은 꼬리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아역배우 이미지의 과도기는 역할의 나이가 아니라 역할의 성격에서 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어른스러웠던 역할은 '우아한 거짓말'의 만지란 역할이었던 것 같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은 비상한 인물이지만 그렇게 어른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인물의 나이가 아니라 성격에 따라서 성장이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나이는 상관없는 것 같다. 작품만 좋으면 이 다음에 고등학생 역할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지난 3월, MBC '일밤-복면가왕'에도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노래 실력은 물론, 트와이스의 '치어 업'에 맞춰 걸그룹 댄스까지 춰 눈길을 끌었다. 예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이기에 반전의 여파는 더 셌다.

그는 "그때 한창 느끼던 것들이 있었다. 초반에 '자체발광 오피스'를 촬영하면서 그동안에 제 연기생활을 돌이켜보게 됐는데 연기를 오래 했고, 또 작품을 많이 보여드렸지만 개인적으로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직접 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작품 말고는 달리 나와 본 적이 없으니까. 항상 좋은 작품,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목표만 쫓아왔다는 생각을 깨달았다. '복면가왕'처럼 잠깐이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떠올렸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에요. '자체발광 오피스'도 장르가 코미디잖아요.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지만 보셨던 분들이 즐거움을 느끼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거 같아요."

[티브이데일리 윤혜영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