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종종 현실에 정말 존재했으면 하는 드라마 속 인물이 있다. 혹은 배우와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이 동일했으면 하는 바람이 강렬하게 드는 때가 있다. 이러한 감정은 주연이든 조연이든 해당 배우가 맡은 역할을 온전히 구현해내었다거나 본연의 매력으로 영향력의 크기를 배가시켰을 경우 찾아온다.

JTBC ‘라이프’(연출 홍종찬‧임현욱, 극본 이수연)는 병원을 배경으로 생명이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내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방향성에서 비롯된 갈등을 내밀하게 보여주는 의학드라마다. 다소 무거운 소재와 매사에 진지한 인물들이 중심에 포진되어 있어 자칫 건조한 드라마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았으나, 촘촘한 이야기 위해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밀집해 있어 다른 종류의 재미들을 선사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주인공 구승효 사장(조승우)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팀장 강경아(엄혜란)다. 일 밖에 모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구승효는 드라마에서 웃음을 줄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소소하다. 이는 또 다른 주인공 예진우(이동욱)도 마찬가지. 사실상 이들이 주는 재미란, 조승우와 이동욱이 온전히 구현해낸, 하나의 살아있는 인물로서 관찰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과 거기서 발견되는 각각의 인물이 가진 허점에서 오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기존의 드라마가 그리던 비서와 달리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자유롭고 정도 많고 푼수끼도 넘치는 강팀장은 단연, ‘라이프’의 활력소다. 계열사가 병원에 약품을 팔기 위해 가져온 견본품들 중 다이어트에 좋다는 약을 몰래 빼놓는다거나, 예진우의 이력서에 붙은 증명사진을 보며 조각이라고 감탄한다거나 등등, 그녀는 주요 인물들이 병원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경직된 자세로 맞붙고 있는 사이에서 유일하게 긴장을 한 움큼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진지할 땐 제대로 진지하고 필요한 말은 반드시 한다. 의료사고로 사망했다는 게 밝혀진 환자를 놓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구승효에게 강팀장은 부모의 입장과 죽은 자녀의 입장에서 조언을 한다. 자신도 엄마이기에 사인을 밝히겠다고 죽은 자녀의 몸을 다시 끌어내 칼을 대는 일은 못하겠단 생각이 들지만, 죽은 자녀라면 억울함 풀어 달라 하소연하지 않겠냐며, 구승효가 올바르게 밝히는 쪽을 선택하는데 힘을 실어준다.

강팀장을 통해 ‘라이프’는 결 깊은 인간미도 획득한 것이다. 큐엘 전자 홍회장에게 바람 맞고 돌아온 구승효를 보고선 자신이 더 분개하고, 심사하러 온 예선우(이규형)가 의사들에게 존중받지 못하자 사장님이 모시고 오라 했다며 일부러 더 높여 대한다. 이러한 인물이니, 시청자들에게 강팀장은 언젠가 부턴가 굳이 우리 옆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꼭 실재했으면 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해당 배우 엄혜란의 연기력. 그녀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이런 인물로 설정되었다손 치더라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으리라. 즉, 엄혜란이 강팀장에게 단순히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인물을 넘어서 실제로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생명력을 부여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또한 그녀를 이만큼 생생하게 인식하진 못했을 터다.

이제는 엄혜란이 감팀장이었으면 좋겠고 감팀장이 엄혜란이었으면 좋겠다. 현실과 드라마의 구분이 모호해질 정도로 대중의 마음을 매혹시킨 결과다. 조연일수록 주연을 빛내기 위해 튀지 않는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갖추는 일이 중요한 데, 엄혜란은 맡은 배역과 자신이 하나의 인물이 되면서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임무를 해내고 있다. 함께 하는 주연들과 작품 전체까지 빛이 나게 하는 그녀의 참 연기가 새삼 대단하다 깨달아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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