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나인룸’ 속 장화사의 기구한 사연은 진실을 파헤칠수록 억울했다. 장화사는 모든 걸 초월한 듯 살아가는 김해숙의 모습일 때도,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걸 알아채고 분투하는 김희선의 모습일 때도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일등공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케이블TV tvN 주말드라마 ‘나인룸’(극본 정성희·연출 지영수)이 지난 주 8회를 기점으로 반환점을 맞았다.

극이 절반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김해숙(장화사, 을지해이 역), 김영광(기유진 역), 이경영(추영배, 기산 역)의 지독한 악연이 밝혀졌다. 장화사는 을지해이와 영혼이 바뀐 후 교도소를 나간 후에야 자신이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다는 사실과 과거 사랑했던 연인인 추영배가 자신을 이용해 기산의 삶을 훔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다. 인생의 반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낸 장화사는 누명을 벗더라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기구한 팔자였다. 을지해이 몸이 된 장화사는 추영배가 기산으로 살 수 있었던 단서들을 추적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절대 악인에 맞서기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화사가 시한부 선고를 받으며 누명을 벗을 시간이 3개월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는 인물이 가진 절박함을 더욱 강조하는 장치가 됐다. 기구한 사연을 지닌 장화사의 분투기,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는 을지해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여자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절로 감정이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주연배우 김희선과 김해숙은 이를 더 맛깔나게 살리는 힘이 있었다.

김희선은 장화사와 을지해이를 오가며 극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영혼이 바뀌기 전, 그는 성공지향적 변호사 을지해이로 분해 욕망에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김희선은 도도한 표정과 똑 부러지는 말투, 안하무인 태도로 을지해이를 표현했다. 특히 장화사를 도발해 감면을 막은 후 작게 미소 짓는 모습은 성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소름 돋는 모습으로 화를 유발하기도 했다.

이후 김희선은 자신을 도발한 을지해이의 몸이 된 장화사로 분했다. 그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껏 멋을 내고 외출할 땐 80년대 미스코리아 같은 사자 머리를 했으며 택시에선 ‘기사 양반’을 찾았다. 집에 온 손님에겐 커피 대신 설탕물을 내어 주는 등 나이를 숨길 수 없는 모습으로 디테일을 더했다. 또 점차 을지해이의 몸에 익숙해지고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에선 복잡한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다시 영혼을 바꾸길 거부하고 처절하게 질주하는 모습은 을지해이의 인생을 놓고 싶지 않은 장화사의 간절하고 절박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해줬다.

극 초반 김해숙은 눈만 깜빡여도 사연이 뚝뚝 흘러 넘칠 것 같은 장화사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했다. 교도소 동기들의 신뢰와 사랑을 듬뿍 받는 인자함부터, 희망을 다 내려놓은 처연함,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향한 애처로움까지. 그는 크지 않은 감정의 폭 속에서도 장화사의 다양한 면면을 다채롭게 그려냈다.

을지해이로 변한 후에도 김해숙은 맛깔나게 캐릭터를 살렸다. 그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절하게 무너지던 초반부터, 어느덧 적응해 교도소 생활을 하며 체인지 백 방법을 궁리하며 꾀를 내는 모습까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상황에 맞는 처세술까지 해내며 을지해이 자체가 됐다. 또한 고급진(?) 단어 선택, 팔짱을 낀 새침한 자세, 교도소 안의 모든 게 짜증난다는 듯한 신경질적인 말투는 물론, 연인 기유진을 바라볼 때의 애틋한 눈빛까지 완벽하게 표현했다.

웃을 일도 없는 장화사의 절박한 나날. 간혹 웃고 있어도 보는 이들은 절로 눈물이 나는 상황이다. 캐릭터의 변주를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두 사람이 있어 ‘나인룸’은 시청자들을 절로 몰입하게 하고, 각각의 상황에 공감까지 자아낸다. 장화사가 남은 시간 동안 누명을 벗고 기산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앞으로의 전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조혜진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 tvN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