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연휘선 기자] 영화계 큰 별을 보내는 길에 통곡은 없었다. 배우 엄앵란부터 독고영재까지, 영화인들이 세상을 떠난 고(故) 배우 신성일의 마지막을 엄숙하면서도 재치 있게 배웅했다.

6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신성일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배우 독고영재가 영결식 사회를 맡은 가운데 배우인 아내 엄앵란과 장남 강석현, 장녀 강경아, 차녀 강수화 씨를 비롯한 유족과 지상학 장례위원장,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장 등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조문객들이 먼저 입장한 뒤 마지막으로 유족들이 입장하며 시작됐다. 독고영재가 엄숙한 목소리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영정 사진에 이어 이덕화를 비롯해 생전 고인과 막역했던 원로 배우들이 운구를 맡았다. 묵념 후 김두호 홍보위원장이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기까지 유족과 조문객들은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고인을 배웅했다. 간혹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조문객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훔쳤다. 일부는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과 영상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소장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리는 추모 영상도 상영됐다. 영상에는 '고 신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로 시작해 고인을 스타덤에 올리고 아내 엄앵란과 결혼하게 해준 작품 '맨발의 청춘'부터 '초우', '안개', '장군의 수염', '내시', '휴일', '별들의 고향', '길소뜸' 등 고인의 출연작 500여 편 중 엄선된 작품의 명장면이 영상과 스틸 컷으로 소개됐다. 흑백 영화부터 컬러 영화까지, 후시 녹음부터 동시 녹음까지 한국 영화계 변천사를 몸소 겪은 고인의 생애가 유족과 조문객들 앞에 한눈에 펼쳐졌다.

한국 영화계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신성일인 만큼 영결식장을 꽉 채울 정도로 조문객이 몰렸다. 종국에는 헌화할 꽃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문객들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 숙여 인사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엄앵란은 긴 장례 끝에 자리에서 일어설 기운도 없어 보였으나 일일이 조문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고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조사를 맡은 지상학 장례위원장은 고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 그는 "선배님은 당신과 안성기 씨가 출연하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직접 시나리오를 손 보고 계시다며 내년 5월 쯤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엄앵란 선배님 말씀처럼 꺼져가는 순간에도 영화만 생각하고 계셨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슬프다. 그저 가슴이 먹먹하다"며 "선배님에 대한 찬사는 입에 올리지 않겠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선배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다만 분명한 건 선배님처럼 한 시대의 아이콘처럼 대단하고 특별한 대스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성기 배우의 말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던 스타였다고 생각한다. 신성일 선배는 배우가 돼 왕도 돼보고 영웅도 돼보고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 보셨으니 이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버리셔도 될 것 같다. 때론 시련도 아픔도 있었겠지만 이 세상 선배님 같은 축복과 은을 누린 인생이 얼마나 있었겠나. 지난 세월 당신이 있어 우리도 행복했고 흔한 말로 같은 시대를 산 게 행복했습니다. 진정 당신은 한국 영화의 신화였고 역사였다. 이제 선배님은 하늘의 별이 되셨으니 사랑하는 가족을 보살펴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축복해주시기 바란다. 맥아더 장군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했다. 의미 전달이 불분명한 이 말을 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바꾸며 조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장은 추도사를 읊으며 "불과 한달 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위를 가장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걸어오시던 선배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여기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모두를 바라보시던 눈빛은 영화인들에게 무한한 든든함이었다. 선생님은 너무나 많은 추억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500편이 넘는 영화를 통해 사람들 가슴에 영원한 별이 되셨다. 선생님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상징하는 영원한 우상이었다"고 했다. 고인의 다시 한번 읊은 그는 "저희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영화계 상징적인 존재인 선생님을 재조명하고 또 다른 100년을 함께 하고자 했다. 또한 영화계 산적한 많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선생님의 혜안을 듣고자 했다. 매 순간 영화인으로서 후배들의 힘이 돼준 선생님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냐마는 영화를 사랑한 진정을 잊지 않겠다. 선생님을, 선생님께서 사랑한 영화를 기억하겠다. 선생님이 사랑한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부디 하늘에서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엄숙한 장례를 마무리하며 엄앵란은 누구보다 의연하고 담대하게 조문객을 맞았다. 그는 유족을 대표해 마지막으로 마이크 앞에 서면서도 슬픔보다는 재치로 조문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 이 아침에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보니까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특히 엄앵란은 "이 세상 떠나보내면서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구는 날더러 왜 안 우냐고 하더라. 그런데 울면 그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하더라. 이 세상을 떠나는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내가 억지로 안 울고 있다. 이따 밤에 불 끄고 이부자리 덮고 실컷 울려고 한다"며 "그동안 우리가 희로애락도 많았지만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신성일 씨가 다시 태어난다면 선녀같이 공경하고 또 받고픈 마음이다. 여러분이 대신 부인들께 아주 잘하시라. 그러면 또 복이 온다. 저는 길게 하면 싫어하니 그만하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슬퍼할 엄앵란의 재치 있는 인사에 유족은 물론 조문객들도 실소를 터트리며 슬픔을 잊고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 지난 4일 향년 81세로 타계했다. 장례식은 배우 안성기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을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당대를 주름잡는 청춘스타로 맹활약했다. 이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맨발의 청춘'에 함께 출연한 엄앵란과 화촉을 밝히며 세기의 커플로 화제를 모았다. 가장 최근 작품인 2013년 개봉작 '야관문: 욕망의 꽃'까지 생전 500여 편의 출연하며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펼쳐왔다.

7일 오전 11시 경북 영천에서는 고인의 추도식이 열린다. 추도식에서는 고인에 대한 묵념과 함께 약력보고, 추도사 및 추모시 낭독, 추모공연, 분향이 진행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최기문 영천시장이 추도사를, 문무학 시인(전 대구예총회장)이 추모시를 낭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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