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영어 실력에 괜한 호기심이나 오지랖을 발휘하는 일은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한 리포터가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 출연한 배우 에즈라 밀러와 수현을 놓고 진행한 인터뷰가 논란이 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키얼스티 플라, 그녀가 자신의 개인SNS에 게시한 바처럼 정말 9살 정도 된 어린아이가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된 책을 읽었다는 게 놀라웠을 수 있다. 그저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각할 수 있다. 인종차별의 경험이 없었을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포터라면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짚어내야 했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수현이 맡은 배역 ‘내기니’(‘해리포터’ 시리즈 속 빌런 볼트모트가 키우던 애완 뱀으로 아시아여성을 섭외했다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적 설정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를 놓고 몇몇 비판 어린 시선이 오고가는 중이란 것을, 그게 인종차별문제와 관련이 있음 또한 알았을 터다.

그랬더라면 자신이 별 것 아니라 생각한 질문과 반응들이, 이 시점에서 얼마나 무례해질 수 있고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는지, 에즈라 밀러의 반응이 얼마나 사려 깊은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으리라. 에즈라 밀러는 수현이 갖춘 좋은 영어실력에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키얼스티 플라에게 바로 다분한 불쾌감을 드러내는데, 이는 그가 평소에도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만약 에즈라 밀러가 리포터와 동일하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웃어 넘겼다면 별일 없이 마무리될 인터뷰였을지 모른다. 당사자인 수현이 별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 리 만무하고, 다행스럽게도 ‘나만 아니면 된다’가 아닌 ‘나일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깨어 있는 인식을 지닌 그가 함께 함으로써 멋들어진 반박장면이 마련된 것이다.

타인이 겪는 비합리적인 상황이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제대로 알 수 없다. 비합리적 상황에 의해 본의 아니게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저 별일 아닌 것으로, 농담으로 웃어넘길만한 것으로, 과도하게 예민하게 구는 것일 뿐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하지만 세계의 보이지 않는 섭리는 이야기한다. 알게 모르게 연대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든 뒤바뀐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너의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되고 나의 자리가 너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이를 아는 현명한 자들이 보이는 태도가 이타심이리라.

사실 우리가 마냥 키얼스티 플라를 비난할 입장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인종주의적 혐오나 인종차별이 존재하며 이를 위한 법과 제도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가까운 일례로 요 근래 제주도 예멘 난민신청자 급증으로 야기된 청와대 청원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혐오발언을 들 수 있겠다.

즉, 우리도 알게 모르게, 타국의 수현과 같은 존재에게 리포터와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즈라 밀러의 반응을 고맙고 친근하고 멋있게만 여길 게 아니라, 키얼스티 플라의 태도에 분노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할 줄 아는 현명하고 이타적인 사람이기를, 결국 이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임을 아는 사람이기를 바랄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는 한국에서 성공적인 흥행의 기회를 다시 한 번 맞이할 예정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 수현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