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지상파 드라마, 특히 평일 저녁극의 현 추세를 말하자면 ‘파격’이다. 19세로 제한을 둔 잔인한 드라마가 등장하는가 하면, 주말 저녁이나 일일드라마 혹은 아침드라마에서 볼 법한 드라마들이 월화극이나 수목극의 자리를 차지했다. 일정 이상의 품격을 따지던 평일 저녁극의 기준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이는 시청률이 10%를 넘기면 그나마 좋은 성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형편없어진 평일 지상파 드라마의 사정에서 비롯된다. 수위 제한도 없고 소재나 형식의 선택도 자유로우며 지원도 넉넉한 케이블 및 종편(종합편성)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 초반엔 경쟁이 되지 않았던 인지도가, 이제는 지상파의 위세를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게 만들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나 영상 좀 만진다는 연출진들은 일제히 케이블 및 종편으로 옮기고 자연스레 지상파엔 기근이 찾아오고, 이를 타개할만한 계책이 요구된다. 우선 최선을 다해 대세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 케이블 및 종편에서 만들었다면 지상파에서 못 만들게 무어냐, 하는 마음으로 색다른 소재와 주제, 이전과는 다른 수위를 갖춘 드라마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화제성이나 인지도 면에서 탄탄한 기반이 구축된 케이블 및 종편을 따라가기는 역부족, 또 다른 방법이 강구되는데, 기성세대는 아직 지상파를 좀 더 익숙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기인하여 은연중에 분류되어 있던 평일과 주말 혹은 평일과 일일 드라마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여기엔 케이블 및 종편이 주말에 수준 높은 드라마를 방영하며 시청률을 대거 끌어간 것도 한 몫 했다.

사실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는 시청자층이 다양해서 다른 일을 하면서 보아도, 아니면 몇 회 못 보다가 다시 보아도 이해가 잘 될 만큼 단순한 구조를 지닌다. 그런 까닭에, 보통 이야기의 치밀한 구조나 어떤 심오한 주제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느껴야 할 재미를 순간순간의 장면에서 성취하려는 시도에, 즉, 자극적인 요소를 배치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평일 저녁 드라마, 미니시리즈는 주제가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완성도 높은 구조나 작품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나 일일에서, 평일 저녁에서 볼 수 있는 작가들이나 배우들이 달랐다. 특히 배우의 경우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주말이나 일일에서 연기력을 쌓고 평일 저녁으로 넘어오는 분위기였다 할까.

이토록 선이 분명했던 구도가 지금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황후의 품격’에 이어 ‘봄이 오나 봄’의 등장이 대표적 예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지상파의 특별한 노력이다. 각 작품을 집필한 작가의 이력을 보자면 주로 주말 드라마 혹은 일일 드라마를 써왔고 좋은 성과를 거둔 전적도 많더라. 다행히 ‘황후의 품격’ 또한 상당히 걸출한 성적을 내고 있고.

한 가지 염려는,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의 향후 진로가 이렇게 결정되어버릴까 하는 점이다. 코앞의 시청률만 보아서는 긍정적인 ‘파격’이지만 지상파 드라마 세계의 오랜 존속을 생각할 때 그다지 좋은 변화는 아닐 수 있다. 결국 시청자들의 눈은 작품성 있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곳을 향할 테니까. 어쩌면 급변하는 생태계를 맞닥뜨리는 최고의 ‘파격’은 어떤 변화도 영향을 줄 수 없는 독자적인 가치를 꾸준히 쌓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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