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과거에만 해도 히어로 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유치한, 혹은 비현실적인 이야기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한 한국 관객들이 히어로 영화, 특히 마블 영화는 믿고 보는 작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적극적인 공세에 어느 순간 한국 극장가를 장악한 건 히어로들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018년 월별 박스오피스를 살펴보면 가히 히어로 일색이다. 지난 해 2월 ‘블랙 팬서’를 시작으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앤트맨과 와스프’ ‘데드풀2’ ‘베놈’ ‘아쿠아맨’이 한국 영화 시장을 흔들어 놨다.

중요한 점은 12달 중 히어로 영화가 월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횟수다. 2월은 ‘블랙팬서’, 4, 5월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7월은 ‘앤트맨과 와스프’ 10월은 ‘베놈’이 월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꿰찼다. 12월 ‘아쿠아맨’이 월별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것을 감안하면 2018년 한국 영화 시장의 절반을 먹어 치운 건 히어로 영화다.

2010년부터 월별 박스오피스를 분석해 보면 2017년까지 히어로 영화의 강세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2010년은 ‘아이언맨2’가 단 한 편만 개봉해 5월 월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게 전부다. 2011년은 ‘퍼스트 어벤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토르: 천둥의 신’이 개봉했으나 단 한 편도 월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2012년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어벤져스’가 개봉했다. 당시 ‘어벤져스’는 5월에,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7월에 월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어벤져스’ 개봉 이후 점차 히어로 물이 월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2013년은 ‘아이언맨3’ ‘맨 오브 스틸’ ‘더 울버린’ ‘토르:다크 월드’가 개봉을 했다. ‘아이언맨3’는 4월, 5월, ‘토르:다크 월드’는 11월에 월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2015년 개봉한 뒤 또 다시 대규모 히어로 영화의 공습이 이어졌다. 2015년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판타스틱4’ ‘앤트맨’이 개봉했다. 2016년은 ‘데드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엑스맨:아포칼립스’ ‘수어사이드 스쿼드’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을 했다. 2016년에만 히어로 영화가 6편이 개봉한 셈이다.

더구나 디즈니가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면서 마블 코믹스의 세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디즈니가 80조원에 폭스를 인수하면서 ‘엑스맨’ ‘데드풀’의 마블 판권이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팬들이 어벤져스에 데드풀과 엑스맨의 합류를 기대하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가 꾸준히 히어로 영화를 내놓으면서 가랑비 젖듯 한국 관객이 히어로 영화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마블 스튜디오로 인해 여타 히어로 영화들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DC 코믹스이 재개를 노리고 있다. ‘슈퍼맨’ ‘배트맨’ 시리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DC 코믹스는 꾸준히 DC 코믹스 캐릭터 관련 영화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DC 코믹스 히어로는 2016년부터 적어도 매년 1편 이상의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해 ‘아쿠아맨’은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DC 코믹스의 부활 신호탄이 됐다.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의 대결 구도에 다크호스 코믹스마저 합세했다. 2004년 ‘헬보이’, 2008년 ‘헬보이2: 골든 아미’ 이후 11년 만에 닐 마셜 감독이 리부트한 새 버전으로 ‘헬보이’가 4월 10일 개봉을 했다.

그러나 히어로 영화들의 공습에 한국 영화 시장 파이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국내 배급사들은 마블 영화 개봉 시기를 피해 규모가 큰 영화의 개봉을 시기를 잡고 있는 실정이다. 3월 개봉한 ‘캡틴 마블’의 경우 동시기에 볼륨이 큰 한국 영화가 한 편도 개봉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 마블 영화에 이어 DC 영화마저 충성도 높은 관객이 많아진다면 한국 영화의 개봉 시기 눈치 싸움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2018년 월별 박스오피스가 이러한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국 영화 가 월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경우는 4회에 불과하다. ‘신과함께-죄와 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신과 함께-인과 연’ ‘안시성’이 각각 1월, 3월, 8월, 9월에 월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한국 시장 전체 파이의 반을 히어로 영화가 먹어 치우고 남은 반을 한국 영화가 가져가야 했다. 더구나 이 남은 반마저도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보헤미안 랩소디’와 같은 영화와 또 다시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거대 자본이 투자되지 않은 한국 영화의 설 자리는 없다. 비약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과거 할리우드 영화의 공습을 막기 위해 시행했던 ‘스크린 쿼터제’가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줄어들고 히어로 영화의 공습은 강력하다.

[티브이데일리 신상민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