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캴럼] ‘스카이 캐슬’에선 엄마의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하는 언니에게 밀린 둘째딸이더니 ‘히트맨’에서는 무명의 웹툰작가인 아빠를 지지해주는 속 깊은 힙합 소녀다. 이 중 어떤 역할도 어색하지 않게, 설정이 아닌 실제처럼 소화해내는 배우 ‘이지원’은 아직 어려서 놀랍고 그래서 더욱 촉망 받는 연기 유망주임이 분명하다.

영화 ‘히트맨’의 주인공 ‘준’(권상우)은 나라의 비밀 프로젝트에 의해 인간병기로 키워지나 어렸을 때부터 지녔던 만화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죽음을 위장하여 탈출한다. 하지만 웹툰작가로서의 삶도 녹록지 않은 게 현실, 어느새 가장이 된 자신의 무책임함에 대해 괴로워하다 술김에 발설해선 안 되는 자신의 과거를 웹툰으로 그려 내면서 이야기의 모든 갈등이 시작된다.

여기서 이지원은 준의 하나밖에 없는 딸 ‘김가영’을 맡았다. 누구보다 아빠의 꿈을 응원하고 주어진 현실에 로 인해 부모탓을 한다거나 그에 굴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힙합으로 성공하여 효도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아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딸의 모습이지만 이지원은 개성 있는 연기력으로 해당 인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이야기의 빈틈을 어느 정도 메우는 데 대대적인 공을 세운다.

이야기의 빈틈은 가영의 존재 이유와 그것을 풀어가는 드라마적 방식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서 발생한 것이다. 사실 가영은 ‘히트맨’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다. 아빠 준이 과거를 소환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동시에 인간병기 시절 함께 했었던 ‘철’(이이준)과 ‘천덕규’(정준호)가 준에 대한 오해를 푸는 매개체이기도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것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방법에 있어서 상투적이다. 우리가 뻔히 아는 장면, 예를 들어 준이 가영의 속마음을 랩으로 적어 놓은 노트를 훔쳐 본다거나 가영이 철과 천덕규 앞에서 준을 위해 눈물 어린 사연을 푸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익숙하고 낡은 대사다, 아빠가 철이 삼촌 이야기 많이 했어요, 유일한 가족이랬어요 등등. 그리고 신파에 유독 악한 건지 이 정도의 이야기와 눈물에 인간병기 출신이라는 천덕규와 철은 또 금새 마음을 열고 준과 한 팀이 된다.

이는 작품의 개연성을 순식간에 하락시켜 보는 이들의 몰입을 방해하기 충분하나 정말 다행히도 와중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다. 그럼에도 빛나던 이지원의 연기력이다. 자유분방하고 기개 넘치는 가영의 모습을 이지원 특유의 표정과 목소리, 정확한 발음으로 제대로 구현하여, 그녀가 길거리에서 음악에 맞춰 신나게 걷는 장면에서부터 아빠의 불쌍함을 호소하는 장면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설득력을 높인다.

가영에게 주어진 설득력은 구멍 난 개연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물론 작품 자체의 빈 틈은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이 다 덮을 수 없는 크기이다마는, 배우들이 자체적으로 생성한 설득력을 살짝 올려 놓으면 그 순간만큼은 모면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배우의 좋은 연기는 간간히 쓰러져가는 작품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데 ‘히트맨’에서의 배우 이지원이 그러했다. 앞으로 어떤 필모그래피를 쌓아갈지 몰라도 그녀의 연기가 참여한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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