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지하 기자]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자 세계적 영화음악 거장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암 투병 도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2일 마이니치 신문·스포니치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카모토는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카모토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캡은 이날 “사카모토가 직장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컨디션이 좋은 날엔 자택에서 창작을 계속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음악과 함께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고인의 음악을 사랑해 준 팬들과 고인의 질환을 치료해 준 의료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Ars longa, vita brevis, Art is long, life is short)”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도쿄 예술 대학 재학 중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 ‘사우전드 나이브스(Thousand Knives)’를 발매하며 데뷔했고, 같은 해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 결성에 참여하며 인기를 끌었다.

1983년 팀이 해체된 이후에는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특히 같은 해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영화음악에 뛰어들었는데, 이 작업물들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음악 작업과 동시에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로는 영국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영화 ‘마지막 황제’(1986)의 음악으로는 이듬해인 1987년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오리지널 음악 작곡상, 그래미상 등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마지막 사랑’(1990)과 ‘리틀 붓다’(1993)로 골든글로브와 영국영화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영화음악계를 주도했다.

첫 번째 암 진단은 2014년이었다. 그해 7월 인두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졌지만,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복귀작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로 골든글로브상,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21년엔 직장암으로 전이된 사실을 공개하고 수술을 받았지만, 병환이 그의 음악 열정을 이기진 못했다.

지난해 12월 11일에는 직장암 투병의 고통을 승화한 온라인 피아노 독주회 ‘류이치 사카모토 : 플레잉 더 피아노 2022’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을 만났다.

사카모토는 당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곡연에서 ‘마지막 황제’의 OST를 비롯해 13곡을 연주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등 20여 개 국가로 송출됐는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앨범 작업도 계속했다. 자신의 일흔한번째 생일인 지난 1월17일엔 6년 만의 오리지널 앨범 ‘12’를 발매했다. 사카모토가 계속되는 투병생활 속에서 일기를 쓰듯 제작한 음악의 스케치 중에서 12곡을 골라 한 장의 앨범으로 정리한 작품집이다.

앨범 아트워크는 사카모토와 친분이 있는 그림 ‘점으로부터’로 유명한 이우환 화백이 그린 드로잉을 사용했다.

이우환 화백과의 연 외에도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교류했는데 특히 1984년 공개된 ‘올스타 비디오(All Star Video)’는 영상과 음악을 결합한 멀티미디어 작품으로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만든 영화 ‘남한산성’(2017)의 음악 감독도 맡았다으며, 2018년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국내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2019)도 작업했다.

내한 공연을 향한 인기도 상당했다. 지난 2011년 사카모토가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와 자동 연주되는 피아노가 조화를 이루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국내에서도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밴드 못의 멤버 겸 싱어송라이터 이이언은 “언제나 쫓아갈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는데 더 먼 곳으로 가셨군요”라고 애도했다.

배철수는 SNS에 “동년배의 죽음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며 “그의 전기를 읽고 성장기의 문화환경이 많이 부러웠는데… 배캠친구 ‘사카모토 류이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한 사카모토 류이치와의 인증샷을 공개했다.

정재형은 “나에게 빛이 되어주었던 당신이었습니다! 평화와 함께하시길 고마웠습니다”라고 애도했고, 롤러코스터 조원선은 “오늘 유난히 빛이 예쁘더니.. 오늘 심은 나무를 보며 오래오래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편히 쉬세요”라고 적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도 글로벌 커뮤니티 위버스에 “선생님 머나먼 여행 평안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애도했다. 사카모토는 생전 암투병 에세이에 슈가와 만난 일화를 적었는데, 슈가를 “음악에 진지한 청년”으로 기억했다. 슈가는 열두 살에 부모와 극장에서 봤던 ‘마지막 황제’를 계기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카모토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을 이어간 만큼, 사후에도 그의 작업물들이 순차 공개될 예정이다. 오는 14일에는 지난해 말 연 온라인 콘서트 등의 내용이 담긴 다큐가 공개된다. 오는 6월 일본에서 개봉 예정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의 음악도 사카모토가 맡았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사카모토 류이치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