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배우 전여빈은 욕망한다. 한없이 깨어지고 넓어지기를. 자신이 느낀 것을 자신만의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하기를. 이 모든 욕망은 전여빈이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전여빈은 극 중 신성필름의 신미도를 연기했다.

전여빈에게 ‘거미집’은 꿈만 같은 현장이었다.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와 함께 호흡을 맞출 기회인데 안 할 이유가 있나. 전여빈은 “‘밀정’과 ‘인랑’에서는 감독님에게 디렉팅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보니까 감독님에게 디렉팅 받는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궁금했다. 강호 선배님과 함께 눈을 보고 에너지를 나누는 것도 배우로서 꿈이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에도 같이 연기할 때 설레고 들뜨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원해왔던 영화적인 순간이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라고 했다.

김지운 감독의 집요하고 치열한 방식의 작업은 전여빈의 열정을 불태웠다. 전여빈은 “단 한 신도 허투루 보내지 않더라. 항상 집중하고 계신다. 저에게 주어진 과제는 1~10 테이크가 있다면 내가 준비해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미도는 자유롭고 퍼져나가는 파장의 사람이라서 좀 더 표현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여빈은 “감독님에게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결단코 ‘거미집’을 놓지 않겠다는, 세공되지 않은 보석을 끝내 세공해 버리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김열과 표현 방식은 다른데 비슷한 면모가 보였다. 미도는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김열 감독을 존중하지 않나. 저도 배우 전여빈으로서 순간순간마다 지운 감독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일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다.

전여빈이 연기한 신미도는 극 중 인물 중 유일하게 김열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김열 감독 보다 더 바뀐 결말에 집착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전여빈도 신미도의 캐릭터 특성을 ‘불도저’로 잡았다. 전여빈은 “미도를 보고 떠올랐던 건 불도저였지만, 그 불도저가 위협이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소 귀여운 사이즈의 불도저이지만 엔진만큼은 강력할 거란 이미지가 있었다”라고 했다.

전여빈은 “개인 리딩할 때 감독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힌트를 얻었다. 근데 저는 감독님의 미도에서 나만의 해석을 붙여보고 싶었다”면서 바뀐 영화의 결말에 집착하는 신미도의 마음을 마치 첫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여빈은 “이 세상에 처음으로 사랑할 것을 만난 사람의 마음이 멀리서 봤을 때 우둔해 보일지라도 그 사람에게는 생에 언제도 못 올 마음이지 않나. 한편으로는 첫사랑 같은 마음일 것 같기도 해서 미도를 표현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금수저라는 이유로 신성필름의 후계자가 된 신미도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어떠한 갈증이 있었을 거란다. 김열 감독의 바뀐 영화의 결말이 신미도의 그 갈증을 건드렸고, 신미도는 속절없이 빠져든 첫사랑에 불도저처럼 영화 재촬영을 밀어붙였다고 생각했단다. 전여빈은 “신미도의 모습은 사랑에 빠졌을 때의 자세다. 어느 날 사랑을 만난 거다. 명분이 섰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겠다 마음먹은 거다. 생애 첫 확신을 느낀 사람 같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라고 했다.

전여빈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둔 건 앙상블이었다. 배우들의 앙상블의 에너지로 극이 진행되는 만큼, 전여빈은 현장에서 최대한 감각을 열어두고 앙상블에 집중했다. 전여빈은 “1970년대라는 시간적인 공간과 세트장이라는 배경 제한도 있었기 때문에 톤 앤 매너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료 배우들의 톤을 열심히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여빈은 “송강호 선배님 고과 장영남 선배님, 정수정 배우의 연기를 중점적으로 봤다. 내가 저분들의 대사 호흡이나 리듬을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어 전여빈은 “제가 당시 ‘너의 시간 속으로’라는 작품과 병행하고 있었다.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한계에 부딪히면서 벽을 깨는 미도의 열정을 전여빈의 에너지로 뚫어보려고 했다. 이 모든 시간이 끝나갈 때쯤에는 미도에게 고맙더라. 글 속에서 사는 이 인물 자체가 주저앉아있는 것 같은 저를 계속 일으켜 주는 느낌이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촬영을 가야 한다면서 까탈스럽게 구는 한유림에게 막말을 퍼붓고, 검열하러 온 인사들을 가둬두는 신미도의 행동은 일견 나쁘게 보일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전여빈은 신미도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방식이 서툰 사람이라고 했다. 전여빈은 “저도 마음 안에 느낀 것을 내 언어와 신체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꿈꾸고 있다. 배우라는 일이 사실은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내 마음의 뜨거움과 현실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저는 이걸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 그 마음이 미도랑 닮아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여빈은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과 ‘중꺾그마(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 두 말이 미도에게 너무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배우라는 일을 시도하면서 얼마나 꺾였던 적이 많아겠나. 그럼에도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안된다고 해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거미집’으로 영화인들의 꿈인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입성한 전여빈이다. 전여빈에게 ‘거미집’이 남긴 건 비단 칸영화제만이 아니었다. 전여빈은 “‘거미집’ 현장을 마치고 느꼈던 건 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게 무엇이든 1cm라도 더 커진 느낌이었다.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넓어졌다”고 했다.

이어 전여빈은 “사람이 책과 영화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자기가 겪는 세상이 좀 더 넓어질 때 기쁨을 느끼지 않나. 그런 것을 되게 많이 느꼈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광대무변(廣大無邊)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한없이 넓어서 끝이 없다는 뜻이죠. 이게 배우의 마음과 닮아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마음 안에 품었던 단어이기도 해요. 제가 예상하지 못한 표현의 영역이나 고찰해보고 싶은 존재들을 만나서 한없이 깨어지고 넓어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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