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 하정우의 오답노트 [인터뷰]
2023. 09.25(월) 09:00
1947 보스톤 하정우
1947 보스톤 하정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흥행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빠르게 변화하는 탓에 어떠한 공식도 이젠 무용지물이 됐다. 그러니 오답노트를 통해 작품과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배우 하정우는 지금 그 오답노트를 차근차근 적어가고 있다.

27일 개봉되는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하정우는 극 중 1947년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참가하게 된 국가대표 마라톤팀 감독 손기정을 연기했다.

신인 시절부터 강제규 감독의 영화 오디션을 볼 정도로 오랜 기간 그와 함께 작업하길 바랐지만, 좀처럼 하정우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정우에게 오랜 기간 선망의 대상이었던 강제규 감독과 마침내 작업할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던 ’1947 보스톤’은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오랜 꿈이 기어코 실현되는 순간, 하정우에게 이번 작품은 단순히 출연작 이상의 의미였다.

그렇지만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현장에서 예민하게 감정을 세워 연기하는 스타일이었던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정우는 “모든 사람들이 손기정 선생님을 알지 않나. 또 그분의 가족분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의식을 안 할 수 없었다”면서 “내 안에서 출발하기보다는 감독님에게 매번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감독님 뿐만 아니라 제작사 대표에게도 ‘손기정 선생님의 재단에서 괜찮아하느냐’고 항상 더블 체크를 하면서 촬영했다”라고 했다.

심지어 헤어 스타일, 의상에도 기민하게 신경 썼을 정도로 하정우는 손기정에게 누가 되지 않게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고증에 진심이었다.

이북 출신인 손기정의 말투를 재현하는 데에도 세심하게 접근했다. 북한 사투리 설정을 두고 오랜 기간 강제규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정우는 “선생님이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 왔을 때 말투에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인터뷰 영상을 참고하고, 재단 가족분들에게 물었더니 심한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말 맛이 있는 말투여서 제 말투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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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만큼이나 캐릭터의 감정선을 그려나가는 것도 하정우의 숙제였다. 마라톤에 참가했던 서윤복(임시완), 남승룡(배성우) 캐릭터보다 다소 정적으로 보이지만, 감정의 파고만큼은 역동적인 캐릭터인 만큼 한정된 액션 안에서 어떻게 감정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제 캐릭터는 서윤복, 남승룡과 다른 축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손기정 선생님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시고, 대회까지 선수들을 데리고 간 마음 가짐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극 중 서윤복, 남승룡의 감정이 마라톤 장면에서 폭발했던 것처럼, 손기정의 감정은 연설 신에서 가장 잘 보여준다. 극 중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해야 했던 손기정은 제자를 해방된 조국의 국기를 달고 달리기 위해 감독으로서 보스턴으로 향한다. 하지만 주최 측이 한국을 미군정의 통치를 받는 난민국 취급하면서 성조기가 박힌 유니폼을 건네자, 손기정은 왜 서윤복, 남승룡이 태극기를 달고 달려야 하는지 연설한다. 하정우는 이 연설신이 후반부에 펼쳐지는 마라톤 대회 전개에 힘을 실어줄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해 연습, 또 연습했다. 하정우는 “연설신을 두 달 동안 준비했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설득력 자체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두 달 동안 열심히 대사를 읽고 또 읽으면서 준비를 했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하정우는 연설신의 빌드업을 마라톤 대회 장면으로 이어나가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준 임시완에게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하정우는 이에 대해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일이 없는데 처음인 것 같다. 대회가 영화에서 나왔을 때 빛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임시완 배우가 너무 잘 수행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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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의 일을 왜 지금 영화로 내놓았을까. 하정우는 이에 대해 “이야기가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밀도가 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뻔한 이야기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뻔한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는 태극 마크를 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고,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영화 ‘비공식작전’에 이어 ’1947 보스톤’까지 약 한 달이 조금 넘는 새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이게 된 하정우다. ‘비공식작전’이 완성도에 비해 아쉬운 관객수를 기록한 만큼 추석대전에 나서는 하정우의 마음도 무겁기만 하다.

특히 팬데믹 기간동안 달라진 관람 문화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하정우는 최근 숏폼이 유행하면서 빨리 감기로 작품을 보거나, 긴 호흡의 영화나 드라마를 기피하는 것에 주목했다. 하정우는 “일단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면서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추천하고 권유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또한 하정우는 “작품을 그런 형태로 소비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하정우는 “지난해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이제 겨우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극장은 단순히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더해 소풍이다. 다만 지켜보다 보면 어떻게 진화가 되고 흐름이 바뀔지는 지금 보다는 손쉽게 깨닫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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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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