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이트쇼’ 한재림 감독, 도파민의 시대에 질문을 던지다 [인터뷰]
2024. 05.25(토) 10:00
더 에이트 쇼 한재림 감독
더 에이트 쇼 한재림 감독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자극만을 쫓는 도파민의 시대, 한재림 감독은 물었다. 재미를 위해 어디까지 가야 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가 지켜야 하는 선은 어디까지인지. 딱 떨어지는 답이 없기에 한재림 감독과 우리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영화 ‘관상’ ‘더 킹’ ‘비상선언’ 등을 통해 영화 연출을 인정받았던 한재림 감독이 이번엔 무대를 시리즈로 옮겼다. 이번에도 본인의 장기인 사회적인 메시지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풀어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로 시리즈 연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17일 공개된 ‘더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런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배진수 작가의 유명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적절히 각색한 작품이다. 한재림 감독은 특히 ‘파이게임’ 속 ‘사람이 죽으면 게임도 끝난다’는 규칙에 크게 매료 됐다고 했다. 한재림 감독은 “배진수 작가의 두 작품은 굉장히 유니크하다. 보통 주인공이 본인의 능력으로 서바이벌 게임에서 성공하지 않나. 그런데 여기에서는 주인공이 계속 위기에 처하는데 그게 재밌었다. 블랙코미디 요소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면서 “일반적으로 서바이벌 장르에서는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거 아닌가. 그런데 ‘파이게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룰이 있더라. 이걸 시리즈에 가져오고 싶었다. 한 사람도 안 죽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이야기로 바뀌더라”고 했다.

원작의 블랙코미디 요소와 ‘사람이 죽으면 게임도 끝난다’는 규칙을 가져온 한재림 감독은 각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8명의 캐릭터를 구현해 냈다. 자극과 관심을 추구하는 8층, 두뇌 능력으로 쇼를 돌파하려는 6층, 폭력을 앞세우는 6층,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타적인 5층, 자신의 이익에 따라 편을 바꿔먹는 4층, 보통의 일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3층, 권력층에 반항하는 외골수 기질의 2층, 가장 소외 계층인 1층 등 개성이 뚜렷한 여덟 명의 캐릭터를 ‘더 에이트 쇼’에 던져두고 이야기를 짜나가기 시작했다.

각색과 연출하는 과정에서 한재림 감독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는 시리즈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었다. 영화와 분명히 다른 시리즈의 특성을 나름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한재림 감독은 “시리즈는 영화와는 다르니까 시리즈에 맞는 방식이 뭘까라는 고민이 있었다”면서 “전체적인 구조에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또 기승전결이 있되 다음화를 보고 싶어 하게 하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다. 이 부분이 영화와는 다른 지점이었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이어 한재림 감독은 “영화는 러닝타임 동안 극장에 관객들을 모셔놓고 보여드리지 않나. 시리즈는 TV와 휴대전화로 보통 보니까 많은 저항들과 싸워야 한다. 시리즈를 끝까지 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했다. 영화와 달라 기대되는 부분도 있었다고. 한재림 감독은 “영화는 개봉할 때 성적표 받는 기분이라 부담이 있다. 반면 시리즈는 제가 모르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설레더라”라고 말했다.

총 8화로 제작된 ‘더 에이트 쇼’는 각 회차를 여는 인물들이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전 회차에서 엔딩을 장식한 인물이 다음 화차에서는 오프닝을 여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을 취했다. 여덟 명의 참가자를 차례로 포커스 하며 몰입도를 높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재림 감독은 “여덟 명이 여덟 개의 계층을 대변하고, 이를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구성을 했다”면서 “한 에피소드를 시작할 때 각기 다른 인물로 시작하고 끝날 때는 다른 인물로 전환되게 했다. 사건과 인물을 같이 궁금하게 만들고 다음 회는 그 인물로 시작해 보자고 구조를 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재림 감독은 “이들의 전사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시청자들이 개성이 아니라 계층에 이입했으면 했다. 개성이 너무 뚜렷하면 대상화가 되기 때문에 계층을 나눠서 이입하고 가면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서 구성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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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에이트 쇼’는 각 층마다 시간당 상금이 다르다는 단순한 규칙이 계급을 만들고, 그 계급이 어떤 갈등을 촉발시키는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서바이벌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반전과 흑막 등의 설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한재림 감독이 서바이벌 장르가 아닌 사회 부조리극에 무게중심을 뒀기 때문이다.

한재림 감독은 이에 대해 “저는 서바이벌 게임 장르를 비껴가고 싶었다. 이걸 통해서 사회 부조리극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이 작품의 주제는 ‘자본주의 안에서 재미란 무엇인가’이다. 참가자들이 돈을 벌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주최 측에게 재미를 줘야 하지 않나. 그 부분이 저희 직업과 맞닿아 있더라”라고 했다. 이어 한재림 감독은 “참가자들이 재미를 위해 주최 측에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제 모습 같더라.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는 엔터테인먼트 창작자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했다.

얼핏 보면 작품은 자본주의와 계급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한재림 감독의 말처럼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도파민의 시대에서 창작자는 어떤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지, 또 재미를 위해서는 어느 선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담겼다. 일례로 참가자들이 주최 측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자 직업이 감독인 7층이 자극만 쌓이면 고통스러워질 거라고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재림 감독은 그러한 고민들을 다양한 메타포로 작품 곳곳에 심어보며 주제를 개인이 아닌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로 확장시켰다. 그는 “사실은 이렇게 재미만 추구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저도 고민이 되더라. 옛날에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고 질문이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 많이들 좋아하지 않았나. 지금은 재미만 있으면 충분한 시대 같다. 재미만 추구하는 시대일 수도 있다. 그런 시대가 되면서 과연 나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한재림 감독의 고민은 결국 영화가 처한 현실과 맞닿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OTT의 발달로 극장 산업이 포함된 시네마는 점차 설 곳을 잃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한재림 감독의 고민은 1층의 엔딩에 담겨있다. 영사기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진 1층은 불붙은 영사기에 떨어져 화상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에 대해 한재림 감독은 “1층이 필름에 불 타 죽는 것은 제가 느끼는 시네마에 대한 아쉬움이었다”라고 했다. 그 장면에는 시네마뿐만 아니라 자분주의에 희생되고 있는 소외계층을 기억하려는 한재림 감독의 의지도 담겼다. 한재림 감독은 “마지막 대사도 ‘모던 타임즈’ 대사다. ‘모던 타임즈’가 개봉 당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작품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상황과 바뀌지 않았다는 게 아이러니했다”면서 “저에게 이 작품은 자본주의극이기도 하고 서바이벌 게임을 비튼 작품이기도 하다. 입체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창작자가 지켜야 하는 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한재림 감독은 표현 수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한재림 감독은 “창작자가 어디까지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계속 마음에 걸렸다”라고 했다. 작품 공개 이후 일각에서는 8층과 6층의 배드신을 왜 보여주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재림 감독은 “그런 부분들에서 쾌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더 에이트 쇼’ 속 폭력 장면을 두고 시청자들은 불쾌하고 심지어 역겹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한재림 감독은 “그렇게 느끼시는 이유는 쾌감이 안 느껴지는 폭력이라 그렇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배제하고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미였다”라고 말했다.

폭력에 대한 메시지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장면을 오마주한 수면 고문 장면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재림 감독은 “재미의 끝까지 가면 무엇이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불쾌함이 남더라. 먹방을 예로 들면 먹방을 보다 보면 점점 자극적인 것만 찾게 된다. 먹방 하는 분들 중에서도 혐오스러운 것까지 먹는 분도 있지 않나. 그걸 보는 우리도 고통스럽다. 그 사람이 왜 그런 걸 먹나 생각해 보면 관심받으려고 하는 거다. 자기를 고문하면서 재미를 주는 지점이 우리 작품과 비슷했다”라고 했다.

이어 한재림 감독은 “수면 장면은 원래 원작에 있다. 각색 과정에서 뺄 수도 있었지만 그 장면을 쓰되 최대한 안 불편하도록 편집했다. 3층의 상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시계태엽 오렌지’도 결국 폭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작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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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감상과 비판을 부른 작품이지만, 한재림 감독에게 ‘더 에이트 쇼’는 자신의 고민을 담아 시청자들과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만족을 주는 작품이었다. 만족감과는 별개로 창작자로서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한재림 감독은 “앞으로도 어느 지점에 서 있어야 할지 어느 정도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는 매 작품마다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한재림 감독은 “‘더 에이트 쇼’는 블랙코미디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고민들을 담았다. 창작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문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살 수 없지 않나. 저에 빗대어서 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자본주의 시대에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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