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파란만장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마침내 작품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는 관객들의 선택에 맡길 뿐이다. 4년의 기다림 끝에 극장가에 ‘승부’를 걸은 김형주 감독이다.

지난 26일 개봉된 영화 ‘승부’(감독 김형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승부’의 시작은 절친한 사이인 윤종빈 감독의 아내로부터 시작됐다. 조훈현과 이창호 국수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니 영화화해보라는 아내의 권유를 받은 윤종빈 감독이 이를 김형주 감독에게 다시 제안했단다. 윤종빈 감독의 권유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접한 김형주 감독은 자료 조사를 하며 더욱 소재에 매료됐다.

제자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스승을 이기는 성장 서사로 이야기의 방향을 잡았어도 됐을 터. 그렇다면 김형주 감독은 왜 스승이 다시 제자에게 도전하는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을까. 김형주 감독은 이에 대해 “두 사람의 관계 자체가 극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최정상 자리를 두고 스승과 제자가 대결하는 일이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다른 스포츠는 제자가 올라올 때쯤 스승이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는 제자인 이창호 국수가 워낙 불세출의 천재여서 벌어진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형주 감독은 “스승의 입장에서 자기가 키운 제자에게 타이틀을 뺏겼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했다. 본인이 제자를 잘 가르쳤다고 기뻤을지, 아니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다시 밟아야 할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을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면서 “최정상에 있다가 내리막을 찍으면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이치 아닌가. 이걸 다시 반등해서 올라오는 게 인간 승리의 드라마 같은 느낌도 있었다. 스승이 다시 올라와서 정상에 있는 제자와 재회한다는 이야기가 저는 마음이 많이 갔다”라고 했다.

이야기의 방향성을 잡은 김형주 감독은 직접 조훈현, 이창호 국수를 만나 취재하기도 했다. 이미 자서전과 당시 상황에 대해 다룬 잡지들을 읽었던 김형주 감독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의 대결이라는 타이틀에 조심스러워한다는 것, 그래서 자서전 이상의 이야기가 안 나올 거라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꼭 두 사람을 만나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의 실명을 쓰고 싶었던 김형주 감독은 조훈현, 이창호 국수를 직접 만나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건넸고, 실명 사용을 허락받았단다. 이에 대해 김형주 감독은 “제가 예전부터 풍문으로 조훈현 국수님에게 충무로에서 영화화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두려움을 안고 연락을 하고 뵀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흘렀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는 모르지만 허락해 주셨다. 제 추측으로는 영화화하는게 침체된 바둑계가 살아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해주신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실명 사용까지 허락받은 김창주 감독은 조훈현, 이창호 외에도 영화의 주요한 소재인 바둑에 대해 고심했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으려면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고. 김창주 감독은 “바둑을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바둑이 정적이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지 않나. 저도 그랬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 바둑이 생각보다 너무 처절한 싸움이더라. 실제로 바둑 기사들이 대국을 한 판 하면 4~5kg 정도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고도의 에너지가 소용되는 스포츠다”라고 말했다.

김창주 감독은 바둑 대국 연출에 대해 “밸런스가 중요했다. 어디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할 것인지, 또 너무 불친절하면 아예 집중력을 놓아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너무 설명을 해버리면 인물 감정이 안 보이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절충을 해서 적정선을 찾은 게 지금 정도인 것 같다”면서 “최소한의 정보값을 주기 위한 설명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모두를 만족시키면 너무 좋겠지만 제가 그럴 급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바둑만큼이나 실화를 각색하는 것에도 고민을 거듭했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조훈현과 이창호 국수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영화에 그대로 담자니 다큐멘터리 같고, 상당 부분 각색하자니 잘못된 고증으로 바둑팬들의 원성을 살 것 같았단다. 이에 김형주 감독은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타임라인을 조금 비틀었다. 김형주 감독은 “스승과 제자가 처음 만나는 시점은 조훈현 국수가 세계 대회 우승하기 전이다. 영화에서는 조훈현 국수가 최고의 자리에서 어린 제자를 만난다는 효과를 위해 타임라인 세팅을 했다”고 했다.

이어 김창주 감독은 “조훈현 국수가 영화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이창호 국수에게 디테일하게 훈육을 하시지도 않았다. 워낙 완성형 제자였기 때문에 그날 대국에 대한 복기만 했을 뿐이다. 조심스럽지만 큰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각색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창호 국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그의 어린 시절에 많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돌부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감정 표현도, 말도 없기로 유명한 이창호 국수의 모습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바둑 잘 두는 개구쟁이 같은 면모가 훨씬 강하다. 이에 대해 김창주 감독은 “실제로 바둑을 접하기 전에 이창호 국수가 승부욕도 강하고 개구쟁이였다는 내용이 자서전에 있었다. 성인이 된 이창호 국수가 자기 바둑을 만들면서 변모하는 과정이 아역과 대비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면서 “실제 고증 그대로 아역에게도 성인의 성격을 부여하면 변화하는 지점들이 설득력이 없는 느낌도 있었다”고 했다.

여러 고민을 거듭하며, 조훈현 이창호 국수의 극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조심스럽게 옮겼던 김창주 감독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영화를 선보일 날만 꼽던 그에게 공개 한 달도 안 남았을 시점 날벼락이 떨어졌다. 바로 주연 배우인 유아인의 마약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김창주 감독은 그날들에 대해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촬영과 후반 작업들이 마무리된 상태였다. 만약 그전에 그 사건이 일어났다면 후반 작업을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이었다”면서 “처음에는 믿기지도 않았다. 이 영화는 어디로 가는 건지 받아들이는 시간들이 좀 필요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냥 견뎌내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4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승부’는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이에 김창주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언론 행사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창주 감독은 “생각 보다 담담했다가 VIP 시사회 끝난 뒤 손님들 다 보내고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좋게 써주신 기사를 보고 눈물이 터지기 시작해서 집에 내릴 때까지 울었다”라고 했다.

이제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끝낸 지금, 김창주 감독은 관객들의 평가를 겸허히 기다린다고 했다. 다만 유아인 때문에 관람을 꺼리는 관객들에게 조심스레 이런 말을 전했다. “제가 강요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대중들의 선택이며 권리인 것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어요. 다만 극장에서 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만한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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