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계속되는 폭력은 희수(이유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대외적으로는 모범적인 남편이자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진표(장승조)는 희수와 단둘이 있는 집 안에서만큼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그런 진표의 두 얼굴을 누가 믿어줄까. 도움의 손길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지옥 같은 일상은 결국 희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희수의 친구 은수(전소니)만이 진표의 두 얼굴을 알아차린다. 엄마와 VIP 고객의 아내처럼 온몸 곳곳에 상처로 가득한 희수를 본 은수는 진표를 없앨 결심 한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진표와 똑같은 얼굴을 한 장강(장승조)을 알게 된 은수는 희수와 함께 세상 절박한 공모를 모의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던데. 경로를 이탈한 은수와 희수의 공모에 구원은 있을까.

지난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연출 이정림)는 일본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나오미와 가나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가정폭력을 소재로 두 여성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만큼, 초반부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불쾌감은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은수와 희수의 살인 공모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폭력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잔인한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감수하고 봐야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수위를 낮추고 불필요한 불쾌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일례로 희수와 진표가 한 장면에 함께 등장하기보다, 희수의 시선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진표의 일부 모습만 비추거나, 폭력의 전후 상황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그 잔혹함을 유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이러한 연출은 여전한 불쾌감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청하게 만드는 초반 동력이다.

미장센과 화면 톤, 그리고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작품의 긴장감을 견인하는 중요한 축이다. 전반적으로 스산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통해,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긴장과 불안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여기에 각 회차의 엔딩은 서스펜스를 극대화해 다음 회차를 보게 만드는 구조로 짜여 있다. 폭력에 노출된 은수와 희수의 서사를 조심스럽게 쌓아 올리며 살인 공모의 성공 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이다. 그 서스펜스는 은수와 희수에 이입해 그들의 공모가 성공하길 응원하게 만드는데 한 몫했다.

다만 이러한 엔딩이 반복되고, 서스펜스를 위한 의도된 페이크와 본래 이야기 전개 사이에서 혼동이 생기며 서사의 몰입도를 점차 떨어뜨렸다. 회차마다 은수와 희수에게 새로운 변수가 쏟아지며 긴장을 높이지만, 마지막 회에서 그 복잡한 갈등이 다소 갑작스럽게 정리되는 듯한 인상이 강해 허무함을 낳았다. 폭력에 맞서는 두 여자의 연대를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가 충분히 와닿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먼저 이유미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서의 감정선을 깊이 있게 그려내며, 시청자가 희수의 고통과 절박함을 온전히 체감케 했다. 공포와 무기력, 그리고 벗어나려는 의지를 오가는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작품의 설득력을 실질적으로 견인했다.

장승조 역시 1인 2역을 맡아 폭력의 상징인 진표와 그와 정반대의 결을 가진 장강을 뚜렷하게 구분하며, 인물의 양면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특히 진표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현실적인 공포와 분노를 자아내며, 은수와 희수가 살인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 충분한 개연성과 설득력을 부여했다.

반면 전소니의 연기는 아쉽다. 트라우마와 죄책감, 그리고 희수를 구하려는 절박함 등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 은수의 감정선을 단편적으로만 표현해 표현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임에도 이를 얕게 그려내면서, 인물이 지닌 불안과 절박함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희수의 감정선과 진표의 폭력성이 워낙 잘 표현된 덕분에 은수와 희수의 공모가 설득력을 얻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은수의 감정이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점은 분명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처럼 ‘당신이 죽였다’는 소재로 인해 필연적으로 불쾌감이 내내 뒤따르지만, 최대한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는 연출의 노력은 분명 인정받아 마땅하다. 물론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더러 있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 마땅히 생각해 볼만하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