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최하나 한서율 기자]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명.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유례없는 저출산 시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키즈 애니메이션’ 산업은 사상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핑크퐁 아기상어’는 유튜브 조회수 100억 뷰를 돌파하며 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캐치! 티니핑’은 ‘파산핑’이라는 애정 어린 별명과 함께 부모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디즈니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 K-키즈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글로벌 시장을 점령했을까.

◆“직관은 없다, 오직 데이터”…1900억 뷰의 비밀

성공의 첫 번째 열쇠는 철저한 ‘데이터 기반 전략’에 있다. 더핑크퐁컴퍼니 주혜민 CBO(사업개발총괄이사)는 자사의 차별점을 ‘데이터 기반의 글로벌 디지털 네이티브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주 CBO는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누적 조회수 1900억 뷰라는 압도적인 글로벌 노출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유통,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설계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시장의 반응을 빠르게 반영하는 차별화된 테크 기반의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시청 패턴인 ‘무한 반복(Loop)’은 플랫폼 알고리즘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주 이사는 “아이들은 좋아하는 콘텐츠를 수십 번 반복해서 보는 ‘무한 시청 패턴’을 보인다”며 “이런 패턴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알고리즘상 광고 수익이나 IP 인지도를 단기간에 폭발시키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언어의 장벽을 낮춘 것도 주효했다. 주 CBO는 “대사 의존도가 높은 성인 콘텐츠와 달리, 키즈 애니메이션은 율동과 멜로디만으로도 전 세계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다”며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핑크퐁 아기상어 체조’는 반복적인 멜로디와 따라 하기 쉬운 율동을 통해 전 세계 244개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좁은 내수 시장, 살기 위해 나갔다”…절박함이 만든 글로벌

두 번째 키워드는 ‘생존을 위한 확장’이다. ‘뽀로로’ 제작사 오콘의 우지희 대표는 K-키즈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성공 배경에 대해 냉철한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우 대표는 “해외 시장에 비해 우리나라 시장은 너무 작아 제작비 대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투입 대비 산출이 높은 회사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야 그 모델을 보고 다른 제작자들이 도전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 시장의 파괴력에 주목했다. 우 대표는 “글로벌 진출은 중국 시장이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되며, 그곳에서 1등을 한다면 전 세계 1등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의 점유율이 높으면 굳이 북미 개봉까지 필수로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서, K-키즈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문화 교류를 넘어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쟁작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선도 성숙해졌다. 우 대표는 최근 ‘캐치! 티니핑’의 흥행에 대해 "부러움과 샘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었다"며 “‘캐치! 티니핑’과 같은 작품이 성공하고 시장 자체가 활성화돼야 소비자들이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환경이 마련된다”고 덧붙였다.

◆“영상은 거들 뿐”…완구로 완성되는 수익 모델

세 번째 비결은 ‘완구 중심의 수익 모델(BM)’이다. 성인 애니메이션이 영상 수익에 의존한다면, 키즈 애니메이션의 본게임은 ‘장난감’이다. 우 대표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처음부터 완구 판매, 사은품, 마케팅 용도로 활용되었다”며 업계의 수익 구조를 명확히 했다. 영화나 영상 콘텐츠가 흥행해야 캐릭터 상품 시장이 열리고, 실제 회사의 수익은 여기서 창출된다는 것이다.

더핑크퐁컴퍼니 역시 기획 단계부터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를 치밀하게 계산한다. 주 CBO는 “영상 자체에서 발생하는 수익뿐만 아니라, 완구, 도서, 공연 등으로 확장 가능한 다각화된 수익 모델을 초기부터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베베핀 마더구스 패드’가 일본 아마존 음악 완구, 피아노 키보드 악기 두 개 부분 1위를 동시 석권한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콘텐츠의 인지도가 커머스 매출로 직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타겟의 확장, ‘키즈’를 넘어 ‘패밀리’로

이제 K-키즈 애니메이션 기업들은 ‘아이들만의 친구’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타겟의 확장이 시작된 것이다. 더핑크퐁컴퍼니 주혜민 CBO는 “영유아 타깃을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글로벌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며 “1020 세대를 겨냥한 웹툰 ‘문샤크’와 MZ세대를 위한 3D 애니메이션 ‘씰룩’ 등 IP 다각화를 적극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콘텐츠를 즐기는 ‘공동 시청(Co-Viewing)’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주 CBO는 “콘텐츠의 최종적인 시청 여부와 구매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부모에게 있다”며 “부모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 요소와 교육적 가치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인재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우지희 오콘 대표는 “애니메이션 인력이나 3D 분야의 인력들이 현재 저희 회사로 많이 모인다”며 “게임 업계로 진출하는 분들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문화 콘텐츠, 즉 소프트 파워가 점차 강해질 수 있는 현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키즈 애니메이션은 이제 ‘변방의 장르’가 아니다. 가장 치열한 데이터 분석과 가장 고도화된 비즈니스 전략으로 무장한 K-콘텐츠의 ‘최전선’이다. 전문가들은 아동용 시장에서 축적한 자본과 기술력이 향후 성인용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한국 애니메이션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사진=각 작품 포스터,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