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김지현 기자] 최근 충무로는 독립영화 열풍이다. 거품처럼 사라질 일시적 현상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소규모 영화의 예상치 못한 관객몰이는 분명 충무로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워낭소리'와 '똥파리'를 시작으로 한국 독립영화는 상업 영화에 묵직한 존재감을 알렸다. 300만 관객을 모은 '워낭소리'의 흥행은 기적이었다. 스타는 커녕 소와 할아버지가 주인공이고 시골을 풍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다. 모든 면에서 흥행요소가 부족했지만 진정성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 흥행에 성공했다. '똥파리'도 마찬가지다.


두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자 독립영화계는 고무됐다. 여러 작품들이 앞다투어 개봉됐지만 실질적으로 흥행을 거둔 작품은 전무하다. 최근 '작은 연못'과 '경계도시2'가 그 열풍을 이어가고 있지만 두 작품의 반응에 비해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


영화계에서 독립 영화의 흥행은 늘 반가운 일이다. 작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지 않아야 영화 시장이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독점한 영화시장에 여러가지 목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런 점에서 '첫사랑 열전'(박범훈 감독, 웃기씨네 제작)의 개봉은 반가운 일이다. 독립영화지만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첫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고 '늑대의 유혹'의 히로인 이청아와 정애연 등 배우들의 얼굴도 그닥 낯설지 않다. 다른 독립영화에 비해 흥행요소가 많다는 얘기다.

세 가지 사랑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여진 이 작품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박 감독의 졸업작이 수년동안 손을 거쳐 뒤늦게 개봉이 확정된 것.


하지만 뚜껑을 연 '첫사랑 열전'은 아쉬운 점이 많다. 졸업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 이 작품은 여러모로 습작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세 가지 이야기를 모두 연출한 박 감독 의도가 어느 작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첫번 째 이야기 '종이학'은 사채업자의 하수인 혁수(김성곤)와 부모없이 여동생과 살아가는 서현(이청아)의 사랑 이야기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이들의 사랑을 담았다고 하지만 이들의 삶엔 특별한 애환이 느껴지지 않는다. 독립영화답지 않게 특수계층의 표면만 살피고 있다. 또 짧은 이야기안에 음악이 과도하게 사용돼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것도 아쉽다.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신파성의 소재가 요즘 관객들의 정서에 얼마나 호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화도 나누지 못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남자의 심리는 석연치 않다. 신파를 위해 과도하게 꾸며진 설정이다.


두번 째 이야기 '한번만 다음에'는 독특한 첫경험을 하게 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로 세 가지 이야기중 가장 밝고 대중적인 코드를 지녔다. 첫경험에 대한 남녀의 다른 심리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진다. 또 허를 찌르는 반전도 재미를 선사할 듯 하다.


하지만 남녀의 서로 다른 심리를 그려내면서 공감을 끌어냈던 감독의 의도는 반전으로 되려 의미를 잃는다. 물론 이런 반전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재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세번 째 이야기 '설렘'은 첫사랑을 잊지 못해 한 민박집에 찾아온 여인(이가영)이 첫사랑의 아내(정애연)를 만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과잉된 사운드도 절제됐고 연출도 좋았으나 이야기의 주제가 뚜렷하지 못한 점이 역시 아쉽다.


첫사랑을 잊지 못한 죽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민박집을 찾은 아내가 첫사랑 여인에게 유골을 양보한다. 남편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 죽은 것을 알고 있는 것.


박 감독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자신을 잊지 못한 걸 알게 된 사람의 설렘을 그렸다고 했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자신과 살면서도 다른 이를 사랑한 아내의 좌절 이야기에 더 가깝고 보는 이도 그 절망과 더 가까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첫사랑 열전'은 독립영화에도 불구 첫사랑이라는 남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흥행 소재를 지녔으나, 다소 아쉬운 연출력으로 대중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개봉은 다음달 5일.


[티브이데일리=김지현 기자 win@tv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