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외형만 보면 상남자라는 말이 바로 나올 정도로 거친 남자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그런데 웬일. 이렇게 애교 많고 부드러운 남자였다니. 제대로 반전이다. ‘꿀성대’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목소리와 상대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웃음소리. 생 오렌지 주스를 쉴 새 없이 마시면서 “정말 맛있어요”라고 말하던 장난기 어린 모습까지. 옆에 두고 오래 보고 싶을 정도로 유쾌한 배우 이지호와 서경수를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뮤지컬 ‘트레이스 유’(연출 김달중)는 록 클럽 드바이에서 공연을 하며 살아가는 밴드의 보컬리스트 구본하와 클럽 주인 이우빈이 만들어가는 2인극으로, 본하가 사랑하는 묘령의 여인과 여기에 숨겨진 두 주인공의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해 초연 당시 큰 사랑을 받았던 ‘트레이스 유’는 실제 홍대 클럽 공연을 방불케 하는 록 뮤지컬인 만큼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과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는 현장감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음악과 사운드에 힘을 실은 만큼 배우들은 마이크를 2개씩 사용하고 5인조 밴드가 무대에서 라이브로 함께 극을 이끈다. 대학로 소극장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화려한 영상 기술 역시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이번 무대는 지난 공연에 출연한 기존 배우들의 합류와 새로운 배우들의 등장으로 공연 개막 전부터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 모았다. 드바이의 메인 보컬 구본하 역에는 장승조, 김대현, 문성일, 서경수, 윤소호, 클럽 드바이를 운영하는 전 보컬 이우빈 역에 최재웅, 이율, 이지호, 최성원, 이창용이 열연하고 있다.

이 중 뮤지컬 ‘헤이 자나’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자나페어’라고 불리는 이지호와 서경수는 큰 키와 압도적인 가창력을 자랑,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5살 나이 차이는 있지만,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서로에 대한 살가운 칭찬과 애정 어린 시선을 잊지 않았다. 매사 상대의 말을 존중하는 배려 깊은 행동은 왜 이들이 이렇게 호흡이 좋은지를 십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서경수는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소재라 신선했고, 넘버가 정말 좋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지호 또한 음악이 가장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지호는 “저는 처음부터 우빈이가 되게 끌렸었어요. 물론 우빈이를 하라는 얘기도 있었긴 하지만, 우빈이가 너무 불쌍해서 신경이 쓰였어요. 사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엄마라는 정도만 알겠고. 그러다 보니 음악이 먼저 들어왔고, 드라마를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작품에 더 끌리게 됐어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본하와 함께 나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다보니 본하에게 집착을 하는 우빈을 그리려 했다고 고백했다. 우빈은 본하와 함께 나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반대로 서경수는 여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서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호 “제가 해석한 우빈이는 본하와 같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이용하는 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저 우빈의 집착과 본하의 사랑만 관객들에게 잘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나면 사랑에 버려진 불쌍한 두 아이만 남았으면 해요. 경수와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구축한 이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쭉 가고 싶어요.”


하지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기 때문에 연습뿐만 아니라 공연을 하고 있는 지금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지호는 목 상태를 위해 잘 자려고 하지만 부담감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지호 “첫 공연 때 정말 무서웠어요. 긴장이 된 건 아닌데 ‘이게 맞나. 다들 알까?’라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거든요. 저는 10명 중에 6명만 안다면 실패라고 생각해요. 친절한 게 좋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빈이 본하에게 집착하는 것이 보이고 본하와 우빈이 불쌍함을 관객들이 느끼시길 바랍니다. 딱 그것만 보인다면 좋을 것 같아요.”

리딩만 무려 3주 정도 했었다는 이지호는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 연출님은 됐다고 하시니 더 불안했어요. 그러다 극장에 들어오니 실감이 나더라고요. 저희가 극장에서 테크 리허설을 제일 먼저 했는데, 그제야 믿어졌어요. 최성원 또한 ‘나는 너고, 너는 나라는데 어떻게 믿어. 완전 다르게 생겼는데’라며 고민을 했거든요. 그래서 ‘조명 들어오니까 믿어져’라고 해줬죠. 여자 얼굴 보는데 울컥하더라고요. 너무 예뻐서 이 여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묘했어요. 그제야 조금씩 정리가 됐던 것 같아요”라고 공연장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우빈과 본하가 불쌍하다는 것이 관객들에게 잘 보일 수 있게 더 좋은 표현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보니 매 공연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게 되고, 이 때문에 관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관객들을 만났을 때 생기는 시너지 효과라고 생각하고 어렵지만 더 빨리 연기적인 해답을 찾고자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 이지호와 서경수의 설명이다.

또 이지호는 약을 바닥에 던지는 행동에 대해 “엄마 시체가 있는 자리를 저희 둘 다 동시에 바라보거든요. 우빈은 한 번도 본하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그제야 분노를 표현하는 거예요. 이제 패는 다 밝혀졌으니까 더 이상 숨길 게 없어졌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서경수는 공연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으로 무대에서 내려가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것과 체력 안배를 꼽았다. 초면인 사람에게 반말을 한다는 것이 어렵고 어색해서 제대로 놀지 못하겠다는 것. 그는 “차라리 애교를 떨라고 하면 하겠는데 내려가서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어려워요. 즉흥성이 떨어져요. 나름 똘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대 밑에서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저보다 어린 사람을 찾고, 우빈이에게 빨리 작곡을 하라고 눈빛을 보내곤 하죠”라고 말하고는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는 이지호 또한 마찬가지다. 이지호는 “저 또한 경수랑 비슷해서 말 걸고 하는 건 잘 못해요. 저희는 애드리브 같은 것도 연습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다 무대에서 관객 호응에 맞춰서 하는 거예요”라고 애드리브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경수 “관객 호응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래서 불안하기도 해요. 애드리브를 하다가 큰 일 날수도 있겠다 싶으면 다시 정타로 가요. 어줍잖은 거 던졌다가 안 먹히면 오히려 한 번 더 오버를 하게 되거든요. 근데 그게 안 될 때는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반응이 없으면 그냥 빨리 빠지자고 했어요.(웃음)”

이지호 “경수와 저는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성향이 비슷해요. 우리 둘 모두 웬만하면 애드리브를 안 넣고 텍스트대로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면서 이지호는 파트너 서경수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경수가 평상시 무대에서 안 하던 걸 하면 미치게 좋아요. 노래할 때 뒤에서 기타 치면서 보는데, 저는 경수가 동물처럼 팡 튀는 연기를 할 때 좋아서 죽겠어요.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하고는 “경수는 애교가 정말 많은데 ‘헤이 자나’ 때부터 많이 봐서 굉장히 익숙해요. 귀여워서 계속 더 하라고 해요. 그게 더 경수답고 또 매력적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서경수 또한 자신의 애교에 대해 “애교 많은 배우 TOP 3에 들지 않나 싶어요”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형제 둘이다 보니 제가 딸 노릇을 많이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사춘기다 보니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엄마 흰머리 나는 걸 보니 자연스럽게 또 애교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 에너지를 굳이 숨길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 그는 이지호에 대해 “형은 사납고 거칠 것 같지만, 실제론 되게 포근한 교회오빠 같아요. 자상하고 남 배려할 줄 아는 남자에요”라고 칭찬을 더했다.

앞서 말했듯 두 사람은 폭발적인 성량과 가창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듣는 재미가 있는’ 페어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음악적인 재능은 없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특히 이지호는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을 때가 26살이었는데, 그 때 사람들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어요. 저는 제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음치 박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2, 3년을 매일 울면서 연습했어요. 그래서 잘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할 수도 없어요”라고 과거 연습을 할 때의 기억을 꺼내 놨다.

이지호 “정말 어마어마하게 울면서 했어요. 자신감이 정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디션도 잘 안 됐죠. ‘헤이 자나’할 때도 연습실에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참 창피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에라 모르겠다. 이게 난데 어떻게 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만약 지금 조금이라도 잘하게 됐다고 하신다면 아마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경수 “저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노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많이 어색해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항상 성대를 새 걸로 갈아 끼고 싶어지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제 목소리를 사랑하려고 노력중이에요.”


그간 뮤지컬을 주로 해왔던 두 사람은 연극 도전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면서 각자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을 언급했다. 먼저 서경수는 “심오하지만 관객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바로 이해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힐링극이요. 배우 스스로도 무대 위에서 심장의 요동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지호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저는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제가 여자와 사랑 연기를 하는 것이 상상이 안 된대요. 그래서 해보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또 얼마 전 봤다던 이석준 이명행의 ‘스테디레인’에 대해 “최고”라며 감탄하고는 “아직 안 해본 것이 많아서 여러 가지를 다 해보고 싶어요”라고 의지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각자 스스로를 표현해 달라고 청했다. 이에 서경수는 “경수야, 너 참 잘하고 있어. 파이팅”이라며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폭소케 만들었다. 이런 서경수가 무척이나 귀여운 듯 크게 웃던 이지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뚝심”이라고 대답했다.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진지한 표정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이지호 “저는 풍파가 정말 많았어요. 일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 진짜 그만뒀던 상황도 있었거든요. 심지어 2년 동안은 일도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잘 버틴 것이 다행이다 싶어요. 지금 제가 이 작품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저는 주인공을 하는 게 꿈이 아니라 배역을 맡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놀라워요. 늘 기쁘고 감사해요.”

뮤지컬 ‘트레이스 유’는 오는 6월 29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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